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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사라진 뒤에도, 우리에겐 서로가 남는다

게시일: 2026년 10월 21일 | 원문 작성일: 2026년 9월 | 저자: Clara Collier | 출처: Asterisk Magazine | 원문 보기

그게 무슨 뜻인지 깨닫고 나면, 미국식 노동 윤리에 박수 두 번쯤은 보내고 싶어질 거예요.T1

16비트 픽셀 아트. 해 질 녘 등불 켜진 목공방 앞, 갓 만든 나무 벤치에서 두 친구가 웃으며 차를 나누고, 길 건너 금빛 살롱 창 너머로 실루엣들이 부채를 들고 수군거린다

핵심 요약

AI가 경제적으로 필요한 모든 노동을 대신하게 되면 결국 관계만 남는다는 예측이 퍼지고 있어요. 저자는 이 예측이 맞을 거라고 보지만, 그 세계가 반갑지만은 않다고 말해요.

  • 관계 중심 사회의 선례: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정, 1980년대 미국 중서부 상류층 여성, 1950년대 보스턴 웨스트엔드의 이탈리아계 노동자들은 모두 일이 아니라 소속에서 존엄을 얻었어요.
  • 공통된 결과: 세 집단 모두 험담과 규범 단속에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외부인을 경계하며, 활동과 관심사의 폭이 좁았어요.
  • 일이 주는 것: 사람들은 일에서 돈 말고도 존중을 얻어요. 그 존중은 “누구를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에서 나오는, 사람이 아닌 일에 대한 존중이에요.
  • 상업 사회와 우정: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은 시장이 생존을 위한 거래적 관계에서 사람을 풀어 주어 진정한 우정을 가능하게 했다고 봤어요. 일이 사라지면 그 자유도 위협받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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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하루 종일 뭘 하며 지내게 될까요? 물론 AI가 경제에 필요한 모든 노동에서 우리를 앞지른다면 말이에요.

우리가 모두 살아남고 사이버펑크식 봉건 디스토피아의 신민이 되지 않는다고 치면, 이 문제에는 점점 합의가 모이고 있어요. 기계가 다른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남는 건 우리의 관계라는 거예요.

어쩌면 아예 일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몰라요. 아니면 겉보기에는 오늘날의 고용과 비슷한 무언가가 여전히 남되, 경제학자 알렉스 이마스(Alex Imas)1가 에세이 「무엇이 희소해질까(What Will Become Scarce)」에서 말한 ‘관계 부문(relational sector)’에 몰려 있을 수도 있고요. 사람의 손길을 건넬 사람은 언제나 필요할 테니까요. 그럼 그런 관계 일자리는 어떻게 얻게 될까요? 당연히 관계를 통해서죠. 어차피 모두가 모든 걸 아는 세상에서는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가 중요해요.

이 예측이 실제로 그리는 건 현대식 노동이 이어지는 모습이라기보다, 노동을 바라보던 훨씬 오래된 문화로 돌아가는 모습이에요. 이마스도 이 점을 직접 짚어요. “산업화 이전에는 제품을 그것을 만든 사람과 떼어 놓기 어려웠다. … 경제적 거래에는 뚜렷한 사회적 요소가 있었고, 이는 소비 경험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산업화 이전에는 일하는 것 자체가 존엄하거나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감각이 거의 없었어요.2 우리는 직업이 아니라 촘촘하게 얽힌 사회적 세계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정의되었죠. 그리고 다시 그렇게 될지도 몰라요. 관계 중심의 예측들이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결론이 바로 이거예요. 다른 사람과의 연결이 우리에게 구조와 정체성과 의미를 주는 세계요.

아무래도 그 예측이 맞을 것 같아 걱정이에요.

유인원의 권력과 섹스

기술과 문화 변화의 관계를 두고 거창한 주장을 펴는 건 언제나 위험한 일이라, 꼭 필요해질 때까지는 피하고 싶어요. 그래도 우리가 미래를 모른다는 말은 꽤 부풀려져 있어요. 미래가 과거와 조금이라도 닮는다면 사례 연구로 어느 정도 답에 다가갈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믿을 만한 이유는 충분해요.

18세기 귀족부터 시작해 볼게요. 귀족은 (대체로) 부유해요. 모든 평범한 비관계적 노동을 해낼 로봇이 생긴다면 우리도 분명 부유해질 거예요. 더 중요한 건, 귀족들은 물질적 자원이 필요할 때도 인맥을 지렛대 삼아 땅을 더 얻거나 궁정에서 수지맞는 자리를 따냈다는 거예요. 고된 노동은 필요 없었죠.

그들은 돈을 받고 일하지 않았고, 일을 의미의 원천으로 여기지도 않았어요. 통치를 하거나 서로를 죽이는 일처럼 실제 의무를 진 귀족도 있었던 건 분명해요. 하지만 절대왕정 시대의 궁정 생활은 제가 떠올릴 수 있는 것 중 순수한 관계의 세계에 가장 가까워요.

게다가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했는지, 그들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기로 했는지 아주 많이 알고 있어요. 귀족은 대체로 사회를 예리하게 관찰하면서도 극도로 자기에게 몰두하는 사람들이라, 재능 있고 다작하는 회고록 작가가 되기 쉬워요. 이 장르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그럴 만하게도, 생시몽 공작 루이 드 루브루아의 회고록이에요.3

생시몽은 루이 14세 시대 베르사유의 궁정인이었어요. 베르사유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찬란한 궁정이었고, 미학과 예법에서 비할 데 없이 세련된 곳이었어요. 역시 궁정인이었던 볼테르에 따르면 그 시대는 빛의 네 위대한 시대 중에서도 으뜸이어서, 전성기의 아테네와 로마와 피렌체를 넘어섰다고 해요.

그러니 생시몽 본인은 따분하고 옹졸하며 반지성적인 데다, 혈통과 서열의 미묘한 차이에만 매달려 인간사의 다른 관심사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니 의외일 수 있어요. 그는 평생의 대부분을 어떤 가문이 특정 문장(紋章)을 쓸 자격이 있는지, 고등법원 법관이 공작들 앞에서 특정한 의례용 모자를 써도 되는지를 두고 이해할 수 없는 소송을 벌이며 보냈어요. 그는 왕을 경멸했는데, 왕이 서자들을 의전 서열의 높은 자리에 올려놓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나라의 통치를 재능 있는 평민들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볼테르는 출세한 하찮은 인간으로, ‘어떤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서 얻은 안타까운 평판만 아니었다면 깎아내릴 가치조차 없는 자였죠.)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고, 그만큼 늘 상처받았죠. 그의 회고록을 읽는 건 대피 덕T2의 머릿속에서 수백 쪽을 보내는 것과 비슷해요.

화려하게 차려입은 궁정인들이 늘어선 홀에서 루이 14세가 알현을 받는 장면을 그린 유화
라인하르트 제바스티안 치머만(독일, 1815–1893),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알현」, 캔버스에 유채.

그렇다고 회고록이 재미없다는 말은 아니에요. 재미있어요. 생시몽의 예리한 관찰과 그 내용의 어처구니없음이 대비되는 덕분이죠. 연극, 오페라, 가면극, 축제, 놀이, 그리고 고전 신화 속 인물로 분장한 하인 수백 명이 등장하는 일주일짜리 연회까지, 궁정 생활의 온갖 오락은 일상을 실제로 조직하는 활동의 배경일 뿐이에요. 그 활동은 바로 음모예요. 이 세계에서는 아무도 몰리에르나 코르네유의 천재성을 감상하러 극장에 가지 않아요. (그런 건 볼테르가 그 시대를 다룬 자신의 역사서에서나 지적할 법한 이야기고, 바로 그래서 그가 구제 불능의 부르주아라는 걸 알 수 있죠.) 사람들은 그 자리에 또 누가 왔는지, 무엇을 입었는지, 그 옷차림이 진행 중인 파벌 다툼에서 어느 편에 서겠다는 표명으로 읽힐 수 있는지 보러 극장에 가요.

실망한 한 남자의 회상만으로 사회 전체를 판단하는 건 불공평하겠죠. 게다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18세기 프랑스 귀족 문화는 이런 모습이 아니에요. 계몽주의를 이끈 인물들이 시와 연극과 당대의 가장 시급한 철학적 문제를 논하던 화려한 살롱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건 (대체로) 거짓말이에요. 살롱은 실제로 있었고 필로조프들도 드나들었지만, 이성적 토론보다는 오락을 위해서였어요. 프랑스 역사학자 앙투안 릴티가 그랬듯 살롱의 안주인들과 손님들이 남긴 엄청난 양의 글을 살펴보면, 그들의 대화가 압도적으로 정치 험담이었다는 게 분명히 드러나요.4 그들은 거의 다 귀족이었고, 거의 언제나 자기들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릴티만큼은 못 되지만 귀족 회고록을 꽤 많이 읽었는데, 하나같이 이래요. 생시몽은 병이 유난히 깊이 진행된 사례일지 몰라도 딱 그뿐이에요. 병적 증상은 어디서나 똑같아요. 예카테리나 대제의 회고록을 보죠. 예카테리나는 생시몽과 모든 면에서 정반대예요. 열린 마음을 지녔고, 지적으로 왕성하며, 볼테르를 흠모했고, 권력을 좇는 데는 냉혹할 만큼 실용적이었어요.

예카테리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관찰자지만, 그녀가 관찰하는 세계는 본질적으로 같아요. 문화적으로 보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베르사유의 발끝에도 못 미쳤을지 모르지만, 그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프랑스 궁정처럼 출세할 길은 정치뿐이었고, 모든 정치는 지독하게 사적이었으니까요. 일상은 이번에도 험담이었어요. 누가 누구와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는지, 누가 너무 독실하거나 충분히 독실하지 않은지, 누가 바람을 피우는지, 누가 여제의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 상하게 할 수도 있는지, 아니면 상하게 하도록 유도될 수 있는지. 자유도, 사생활도 없었고, 결국 권력의 중심에 더 가까운 누군가의 총애를 얻으려는 다툼이 아닌 대화는 거의 없었어요.

현대의 독자로서는, 적어도 현대 독자인 저로서는, 물질적 자원을 모두 가진 지적이고 통찰력 있는 어른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요. 너무 체면이 서지 않는 일처럼 보이거든요. 하지만 귀족은 우리와 달라요. 우리는 부르주아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존엄은 성실하고 생산적이며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되는 데 있어요. (다시 말해 일하는 데 있죠.) 귀족의 존엄은 명예에서 나오고, 명예란 가문과 계급의 구별을 지키는 데서 나와요.

귀족 회고록 말고도 저는 영장류 행동학에 관한 글을 즐겨 읽어요. 사실 이유도 비슷해요. 귀족은 기본적으로 침팬지예요. 고도로 사회적이고, 교활하며, 엄격한 내부 서열을 늘 예민하게 의식하고, 동맹과 도전과 기량 과시와 앞서 나가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집요하게 추적해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궁정 사회』 에서 베르사유의 삶을 집어삼킨 정교한 예법과 의례가 문명화 과정의 일부였다고 주장해요. 감정이 폭발하면 서로를 찌르는 것으로 해결하던 무인 귀족에서 제도화된 자기 통제로 넘어가는 과정의 일부였다는 거죠. 분명 그들에게는 그게 필요했어요.

하지만 엘리아스에게서 얻을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절대왕정 아래 귀족들의 행동을 보편적인 영장류 본능으로 어쩔 수 없이 퇴행한 결과로 보면 안 된다는 거예요. 베르사유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수감자들은 일 없는 세계가 필연적으로 낳은 산물이 아니에요. 그들은 모두 수백 년 묵은 봉건 제도와 궁정 의례의 그물 속에서 태어났고, 그 그물 자체도 근대 국가의 탄생이 가하는 압력에 뒤틀리고 있었어요. 우리 사회는 그보다 훨씬 멀쩡한 출발점에서 변해 갈 거예요. 우리는 더 잘할 거라고 기대해도 될까요?

사람처럼 옷을 입은 원숭이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장면을 그린 유화
소(小) 다비트 테니르스(–1690),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원숭이들」, 1660년경, 패널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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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는 숙녀들

수전 오스트랜더의 『상류층의 여성들』 5은 1984년 미국 중서부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도시에 사는 상류층 여성들에 관한 민족지예요.

이들의 사회는 순수한 탈노동 사회는 아니에요. 여성들의 남편은 모두 직업이 있고, 그게 가문 재산 관리일 뿐이라 해도 그래요. 그리고 여성 중 한 명은(딱 한 명은) 본인도 일을 해요. 그렇더라도 이 책은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관계 중심 사회의 현대 사례 연구로는 거의 최선일 거예요.6 오스트랜더가 연구한 여성 중 누구도 집 밖에서 일할 거라 기대하며 자라지 않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아요. 그리고 오스트랜더는 우리와 같은 질문에 관심이 있어요. 이 여성들은 왜 지금 하는 일을 할까? 그들에게 무엇이 중요할까? 그들의 삶을 구조 짓는 전제는 무엇일까?

알고 보니 가장 중요한 전제는 계급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18세기 귀족과 달리 이들은 딱히 야심이 크지 않아요(“이들은 특권을 안고 태어난 남녀이며, 사회적으로 애써 올라갈 필요가 없다”). 대신 “여성들은 ‘마음 맞는’ 사람들의 사교망이 잘 유지되도록 챙긴다”. 이 일의 상당 부분은 사교와 손님 접대, 남편 내조, 그리고 아마 가장 중요하게는 자녀가 사회적으로 걸맞은 혼인을 하도록 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게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아요. 손님 접대에도 한계가 있고, 아이들이 기숙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면 거의 알아서 자라니까요. 이들은 일하거나, 정치를 하거나, 풍부하고 다양한 취미를 키우는 대신 자원봉사를 해요.

상류층에게 자원봉사는 아주 특정한 종류의 활동이에요. 쓰레기를 줍거나 수프를 떠 주는 일이 아니에요. 여성들은 모두 오페라단, 교향악단, 병원, 여러 지역 자선 단체 같은 저명한 비영리 기관의 이사회에서 활동했어요. 이사회에서 하는 일은 거의 전부 기금 모금이었고요. 이들은 자기가 기금 모금에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어서 그 일을 한다고 말해요. 모두 엄청난 부자이고, 다른 엄청난 부자들을 다 알고 있으니까요. 또 모두 돈을 부탁하는 적절한 의례를 몸에 익혔어요. 더 높은 수준의 자선 활동으로 가는 길은 주니어 리그(Junior League)를 거치는데, 거의 모두가 속한 배타적인 상류층 봉사 단체예요.

대부분은 자원봉사를 즐겨요. 유급 직업이었다면 자격이 안 됐을 수준의 책임을 맡아 볼 기회가 되기도 하고, 가족을 돌볼 유연성을 주기도 하니까요. 3분의 1 정도는 이 일을 싫어하지만, 사회적으로 꼭 해야 하는 일이라 여기고 어쨌든 해요. 모두가 자신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정당화하려면 무언가를 돌려줘야 한다고 느껴요. (알렉시 드 토크빌도 이 점을 이해했어요. “미국에서 부자는 자신의 여가를 어떤 산업이나 상업 활동, 또는 공적 의무에 바치는 것이 여론에 대한 의무라고 믿는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만 삶을 쓴다면 그는 자신의 평판이 나쁘다고 여길 것이다.”)

흥미롭게도 여성 대부분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자원봉사가 돕는 지역사회에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지는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대신 오스트랜더는 이렇게 써요.

상류층 여성의 자원봉사에는 붙잡기 어려운 성질이 있고, 실제로 지역사회의 삶을 개선했다는 의미에서의 구체적 성과는 찾기 어렵다. 홀트 부인은 헌신적이고 영향력 있는 지역 활동가다. 그녀는 말실수로 보이는 말을 하고는 눈에 띄게 당황해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만족스러운 건 쓸모 있다는 그 환상이에요.” 스마이스 부인은 자원봉사를 “진정성의 표현”이라 불렀다. 그리고 하퍼 부인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제가 한 일이 정말로 뭔가를 이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상당 부분은 바쁘기 위한 일이에요.”

저는 1980년대 중서부 사교계 숙녀들의 삶에서 자원봉사라는 제도가 차지하는 자리가 흥미로우면서도 불편해요. 우리는 모두 세상의 돈을 다 가진다면 꿈을 좇으며 살 거라고 믿고 싶어 해요. 시간 대부분을 상당히 특정하고 제약 많은, 사회적으로 의무인 활동에 쓰고, 그 활동이 표면상 내건 목표조차 이룬다고 아무도 믿지 않는 삶이 아니라요. 하지만 이게 바로 놀고먹는 부자들이 하는 일이에요. 사실 저는 이게 그들이 가장 제대로 굴러갈 때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오스트랜더는 이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자원봉사가 자신들을 아랫계층과 구분 짓는 요소의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해요(“이렇게 자라면 그냥 하는 거예요. 안 하는 건 상상도 못 하죠”). 이건 넓은 사회 차원에서도, 그들이 봉사하는 조직 안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조직을 운영하는 유급 전문가든 조직이 돕는 수혜자든, 운영 방식에 너무 큰 영향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많은 여성이 강조해요. 모든 게 ‘마음 맞는 사람들의 사교망’을 잘 유지하는 일이에요. 즉 그들이 꼭대기에 있는 질서를요.

이 여성들은 여전히 더 큰 상업 사회 안에서 살고, 그게 분명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들은 베르사유 궁정의 누구보다도 훨씬 친절해요. 하지만 두 사회는 가치의 근본 원천이 같아요. 자신의 가문과 그 가문이 속한 체제요. 그리고 두 사회 모두에서 이는 같은 결과로 이어져요. 삶의 핵심 활동이 모두 그 체제 속 자기 자리를 지키고 방어하는 일이 되는 거죠.

두 경우 모두 결과적으로 사회적 세계가 놀라울 만큼 좁아요. 허용되는 활동과 관심사의 폭이 좁고, 말을 섞어도 되는 사람의 폭은 더 좁아요. 연구에 참여한 모두가 같은 배타적인 사교 클럽들에 속해 있었어요. 거의 모두가 여러 세대에 걸쳐 그 도시에 살았고요. 다른 도시의 똑같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난 한 여성은, 20년 전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 중 한 곳에 시집왔는데도 지금 사는 곳에서 자기는 ‘외부인’이라며 씁쓸하게 웃었어요.

대체로 나쁜 삶은 아니에요. 그저 작은 삶일 뿐이죠. 여성들은 대체로 이 삶을 즐겨요. 물질적 안락을 좋아하고, 예술과 음악과 시민적 책임에 대한 관심을 함께하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요. 오스트랜더를 읽는 동안 저는 앤서니 트롤럽을 자꾸 떠올렸어요. 그의 소설은 사실 모두 지주 계층이 산업화나 휘그주의T3에 맞서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지키려 애쓰는 이야기예요.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다른 것도 자꾸 떠올렸어요. 아주 다른 사람들에 관한, 그리고 일과 또 아주 다른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 관한 다른 민족지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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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계급

바로 『도시의 마을 사람들』 7이에요. 사회학자이자 도시계획가인 허버트 J. 갠스가 보스턴 웨스트엔드의 노동 계급 이탈리아계 미국인을 다룬 1962년 민족지죠. 이상한 비교처럼 보일 거예요. 노동 계급이라면 정의상 일을 하지 않나요?

일을 하긴 해요. 하지만 ‘노동 계급’은 폭넓은 말이에요. 1950~60년대에 보스턴의 갠스, 런던의 마이클 영과 피터 윌모트, 파리의 앙리 쿠앵을 비롯한 일군의 민족지학자들이 당시 막 사라지기 시작하던 특정한 노동 계급의 삶을 다룬 책을 썼어요. 이들이 연구한 사람들은 도심의 인구가 조밀한 저소득 동네에 살았는데, 모두 곧 도시 재개발로 쓸려 나갈 곳이었어요. 갠스는 책을 쓰려고 1957~58년에 웨스트엔드에 살았고, 그의 글은 시의 ‘빈민가 철거’ 사업에 맞선, 결국 실패한 캠페인의 일부였어요. 그는 웨스트엔드가 빈민가가 아니라 결속력 있고 사회적으로 잘 돌아가는 공동체라고 주장했어요.8

갠스가 ‘도시의 마을’이라는 말을 쓴 데는 의도가 있었어요. 그는 웨스트엔드 사람들이 시칠리아나 남부 이탈리아의 농민이었던 부모와 조부모에게서 사회 조직의 기본 형태를 물려받았다고 봤어요. 이들은 전형적인 양키식 노동관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웨스트엔드 남성 대부분은 비숙련이나 반숙련 육체노동을 했고, 고용은 대개 불안정했어요. 그들은 보람 있는 경력은커녕 어떤 종류의 경력이든 가능하다거나 바람직하다고조차 생각하지 않았어요.

웨스트엔드 사람들이 막다른 일자리를 좋아했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 일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에요. 일은 웨스트엔드 생활을 조직하는 핵심 활동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생활을 꾸릴 만큼만 일했고, 그 생활은 갠스가 ‘또래 집단(peer group)’이라 부르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갔어요. 그의 말을 빌리면 웨스트엔드는 ‘또래 집단 사회’였어요. 성인의 또래 집단에는 부부와 나이가 비슷한 친척(형제자매, 사촌, 인척)과 어릴 적 친구 몇 명이 들어갈 수 있는데, 이 친구들은 아마 부부의 아이들의 대부모로 ‘입양’되었을 거예요. 이 사람들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어요. 퇴근 후 이 집 저 집에 모여 밤늦게까지 머물렀죠. 남자들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도박을 하기도 했지만(이 세계에서 도박은 정말 어디에나 있어요), 대부분은 이야기를 나눴고, 이야기는 대부분 험담이었어요.

철거된 동네 자리에 고층 건물의 골조가 올라가고 있는 흑백 공사 현장 사진
웨스트엔드 동네를 대체한 찰스 리버 파크의 공사 현장, 1961년. 웨스트엔드 박물관 찰스 프라니 컬렉션 소장.

여기서부터 대대로 부유한 중서부 숙녀들, 유럽 귀족들과의 유사점이 보이기 시작해요. 이 집단들 사이에 공통점이 없는 부분은 얼마든지 있지만, 모두가 공유하는 특징도 몇 가지 있어요.

첫째, 누구도 일을 지위의 원천으로 보지 않아요. 웨스트엔드 사람들도 뽐내기를 좋아하지만, 직업으로 뽐내는 일은 절대 없어요. 또래 집단 안에서 말을 잘하는 재능이 훨씬 중요해요. 둘째, 배타적이에요. 웨스트엔드 사람은 어릴 때부터 같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요. 외부인에게는 아주 회의적인데, 평생 같은 동네에서 살아온 다른 민족 집단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마지막으로, 이들은 모두 일탈 행동을 단속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써요. 웨스트엔드에서 일탈이란 보통 여성에게는 성적 문란함, 남성에게는 여성스러움, 그리고 누구에게나 계층 상승의 열망을 뜻해요. 소년이 학교 성적이 너무 좋거나 사무직을 원한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어요. 남다른 성공조차 눈총을 받아요. 사람의 존엄을 주로 떠받치는 건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집단과의 관계예요.

서열을 매기고, 구별하고, 서로 맞는지를 가늠하는 주된 기준은 내집단에 대한 충성과 개인 행동의 기존 기준에 대한 순응, 그리고 대인 관계다. 웨스트엔드 사람들은 서로가 지배적인 사회적 관행과 소비 양식을 유지하고, 같은 민족 집단, 적어도 같은 종교 집단 안에서 결혼하며, 중산층 형태의 지위와 문화를 거부하기를 기대한다. … 대인 행동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행동 통제, 즉 자신의 필요와 바람을 조절하고 필요할 때 집단의 필요를 따르는 능력이다.

갠스는 좋은 민족지학자가 다 그렇듯 자신이 연구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생활 방식에는 좋아할 만한 점이 많아요. 그들은 정말로 따뜻하고 풍성하며 끈끈한 사회적 세계를 누려요. 하지만 갠스는 이 사람들이 1950년대 미국 교외의 중산층에 비해 유별나게 순응적이라는 점도 굳이 강조해요.

물론 선택 효과도 있어요. 사무직과 교외 주택을 원했던 이탈리아계 2세들은 이미 웨스트엔드에 없었어요. 그리고 예외 없이, 그들의 예전 인간관계는 그 이동을 견디지 못했어요. (“웨스트엔드를 떠나 낡아 가는 하위 중산층 동네로 이사한 한 가족은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선 사람들이 우릴 찾아오지 않아요. 우리가 부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웨스트엔드 문화는 그 안에서 산 많은 사람에게 좋았지만 한계가 있었고, 그 한계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어요. 그 하나가 웨스트엔드의 파괴였어요. 웨스트엔드 사람들은 자기 집이 헐리고 고급 콘도가 들어서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맞서 조직하는 데 번번이 실패해요. 애초에 조직하는 데 서툰 사람들이거든요. 또래 집단은 필연적으로 평등주의적이어서, 스스로 지도자 행세를 하려는 사람을 믿지 않아요.

그들은 공정한 관료제라는 개념도 버거워해요. 웨스트엔드 사람에게 자기 가족의 이익보다 공식 규칙을 앞세운다는 건 냉정하고, 심지어 부도덕해 보여요. 그 결과 웨스트엔드 사람들에게는 사회학자들이 즐겨 말하는 사회적 자본은 많지만, 그에 따라오는 제도는 하나도 없어요. 노동조합도, 로터리 클럽도, 볼링 리그도, 학부모회 모임도 없고, 성당에는 다니지만 본당은 아일랜드계가 운영해요. 예상대로 그들은 정치적으로 그다지 힘이 없어요.

여기서 갠스는 에드워드 C. 밴필드의 1958년 저서 『후진 사회의 도덕적 기초』 를 끌어와요. 그 후진 사회란 밴필드가 몬테그라노라고 부르는 남부 이탈리아의 가난한 마을로, 웨스트엔드 사람들의 조부모가 태어났을 법한 바로 그런 곳이에요. 그곳 주민들은 그가 ‘무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라 부르는 원칙에 따라 움직여요. “핵가족의 단기적이고 물질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라. 다른 모든 사람도 그렇게 하리라고 가정하라.” 밴필드는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몬테그라노 사람들이 가난하다고 주장해요. 가족 울타리 밖의 누구도 믿지 않으니, 경제 성장에 필요한 추상적 제도를 만들 수 없다는 거죠.

이 연구는 당시에도 지금도 논란이 아주 많아요. 어쨌든 갠스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려요. 웨스트엔드 사람들이 무도덕적 가족주의자일지 몰라도, 이건 (대체로) 만성적 빈곤에 대한 합리적 반응이라는 거예요. 몬테그라노에서도 보스턴에서도, 그들의 고용주는 정말로 착취적이고, 정치인은 정말로 부패했으며, 시민 생활의 제도는 정말로 그들의 기본 이익에 적대적인 집단이 쥐고 있어요.

하지만 이 모든 조건은 이탈리아보다 미국에서 훨씬 덜 고정되어 있었고, 조건이 바뀌자 규범도 바뀌었어요. 이탈리아와 달리 미국에서는 여성이 집 밖에서 일할 수 있었고, 웨스트엔드의 딸들은 어머니나 할머니보다 훨씬 자유롭게 원하는 곳에 가고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었어요. 그 형제들조차 공식 노동시장의 세이렌 노래를 영원히 외면할 수는 없어요. 갠스는 이렇게 써요. “경제 조건이 나아지면서, 밴필드가 무도덕적 가족주의라 부르는 기풍은 그 중요성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물질적 조건은 우리가 가진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도 바꿔요.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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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 발명되었다

관계 중심의 삶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와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흔한 사회 조직 형태이고,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 명이 그 안에서 아무 불만 없이 살아요. 하지만 개인의 존엄이 집단의 일원이라는 데서 나오면, 집단이 하는 모든 일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내가 하는 모든 일도 어쩔 수 없이 집단에 영향을 미쳐요. 러시아 귀족과 보스턴의 이탈리아계 일용직 노동자가 시간 대부분을 험담하며(전문적으로 말하자면 행동 규범을 만들고 집행하며) 보낸 건 우연이 아니에요. 그들은 집단의 평판을 지키고 있었어요. 세상에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죠.

그래서 일과 의미에 관한 오늘날의 논의 상당수가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어요. 인간이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일이나 그 비슷한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건 아주 분명해요. ‘의미’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 즉 개인의 자아실현이나 성장, 더 큰 목적에 이바지하는 일도 필요하지 않아요. 역사적으로 우리 대부분이 그랬듯, 그런 것 없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어요. 우리가 절대 없이 살 수 없는 건 사회적 틀이에요. 사회 속에서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이해하고, 동료들에게 존중받게 해 주는 틀이요. 일이 주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돈 다음으로, 이 필요를 채울 또 하나의 길이에요. 모든 일이 즐겁거나 보람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모두 이 체제 덕을 보고 있어요. 누구를 아는지나 누구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지로 어른으로서 존중과 존엄을 얻을 수 있는 체제요.

그리고 미국인들이 실제로 일에서 무엇을 얻는지 들여다보면 정확히 이런 모습이 보여요.

우선 우리 대부분은 일을 좋아해요.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서는 보통 85%쯤이 자기 일에 ‘어느 정도’ 또는 ‘완전히’ 만족한다고 답해요. 갤럽과 콘퍼런스 보드의 다른 장기 여론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요. 일 자체가 영향력이 크지 않거나 딱히 흥미롭지 않을 때도 그래요.

인류학자 클로디아 스트라우스가 기록했듯, 아주 평범한 일을 하는 많은 사람이 일이 재미있다고 말해요. 하지만 그게 일하는 이유는 아니에요. 한 연구에서 스트라우스는 코로나19 봉쇄 이후 사무실로 돌아온 노동자들의 경험을 살펴봤어요. 이들 중 누구도 일하려고 사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휴가가 늘고 근무 시간이 줄어든 걸 즐겼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대부분은 사무실 복귀를 엄청난 안도감으로 맞았어요.

카지노가 문을 닫기 전까지 라스베이거스에서 바텐더로 일했던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는 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끔은 괴롭고 절망스러워요. 우리는 일하고 싶거든요. 실업 수당, 일하지 않고 받는 공짜 돈은 원하지 않아요. 쓸모 있다고 느끼고 싶어요.” 레벨 2 소믈리에 자격을 딴 애리조나의 젊은 원주민 남성은 일을 그리워했다. 그는 와인이 다른 방법으로는 닿을 수 없는 “세상을 보는 창, 여행하는 방법”이 되었다고 말했다. 50대 흑인 여성은 몇 달간 무급 휴직을 했다가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 방문자 센터의 일자리로 돌아오자 기뻐서 울었다. 그녀는 자기 일을 사랑했다. “동화 같았어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팀의 일원이 되는 게 정말 좋거든요.”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집에 갇혀 있는 게 싫어요. 일하러 못 가는 게 싫어요.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정신 건강을 위해서요. 그렇게 오래 있다 보면 집안일은 다 해 버렸으니, 달리 뭘 하겠어요?”9

스트라우스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일의 여러 면을 좋아했지만, 유독 두드러지는 주제가 있었어요. 응답자들은 물리적 근무 환경이 쾌적하거나 흥미로우면 좋아했어요.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했고요. 무엇보다 유능하다고,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걸 좋아했어요.

더 큰 그림을 보는 연구에서도 같은 패턴이 보여요. 1930년대 후반, 또 다른 고용 위기에 맞서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루스벨트 행정부는 실직한 작가들을 고용해 수천 명의 미국 노인들의 생애 이야기를 기록하게 했어요.

연방 작가 프로젝트(FWP)는 개척자부터 서커스 단원, 손꼽히는 기업가, 해방 노예까지 미국인의 삶을 유례없이 폭넓게 담아낸 스냅숏이에요. 프로젝트의 대상자 대부분이 생의 끝자락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이 자기 삶에 의미를 주었다고 느꼈는지 이해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예요. 2025년에 이 자료를 분석한 연구는 저자들도 놀랄 만큼 일이 가족이나 지역사회 참여만큼이나 비중 있게 등장한다는 걸 발견했어요. 일의 중요성은 남녀 모두에게, 지역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같았어요. 거의 한 세기 뒤 스트라우스의 응답자들처럼, 이 사람들도 자기 일이 진정한 천직인지 아닌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들이 소중히 여긴 건 “일을 잘 해냈다는 자부심, 자신이 키운 기술, 또는 상사와 동료의 인정”이었어요.

FWP의 혜택을 본 사람 중에 스터즈 터클이라는 젊은 작가가 있었어요. 뉴딜이 끝난 뒤 그는 라디오 진행자로 일하고 반자전적 시트콤에 주연으로 출연하다가 구술사로 돌아왔어요. 그의 책 『일』 은 1970년대 초 시카고만 다루면서도 이 주제에 관해 나올 수 있는 거의 가장 포괄적인 기록이에요.

전반적으로 그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일을 장밋빛으로 보지 않았어요(1970년대 초 시카고였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이 싫어한 것과 버티게 해 준 것에는 패턴이 있었어요. 떠돌이 농장 일꾼부터 광고 회사 임원까지 모두가 ‘로봇’ 취급을 받는다고 불평했어요. 문제는 일이 반복적이라는 점보다(그 자체에 대해서는 감정이 엇갈렸어요) 존중받지 못한다는 점이었어요. 노동자들은 무시당하거나 감시당하는 걸 싫어했어요. 가장 비참한 사람들은 자기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겼다고 느끼는 이들이었어요. 이를테면 다기능공으로 승진하고 싶었던 백인 조립 라인 노동자나, 이미 자격을 갖춘 사무직에 들어가려고 학위를 따면서 야간 근무를 하던 그의 흑인 동료 같은 사람들이요.10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동료에게 존중받고, 자기 일에 능숙하며, 지역사회에 쓸모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었어요.

역사 속 다른 모든 인간처럼, 노동자들도 존중받고 싶어 해요. 하지만 관계 중심 사회의 구성원과 달리, 우리가 존중받고 싶은 대상은 비인격적인 것들이에요. 우리의 기술, 성취, 공동의 목표에 대한 기여요. 이런 기여가 세상을 뒤흔들 만큼 대단할 필요는 없어요. 시카고의 웨이트리스나 그랜드래피즈의 사무 보조원도 자기 일이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또 토크빌이에요. “미국의 하인들은 일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비천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주위의 모두가 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급료를 받는다는 생각에 굴욕을 느끼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도 급료를 받고 일하기 때문이다.”)

관계 중심 사회는 도덕적 평등을 힘겨워해요. 그런 사회는 더 제약이 많고 더 배타적인 경향이 있어요. 모두가 그저 좋은 배우자나 부모나 친구가 되는 데 만족하는 세상을 상상하는 건 즐겁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존엄이 집단의 일원이라는 데 달려 있으면, 우리는 누가 집단에 들어올 수 있는지,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를 단속하기 시작해요. 인간이 관계 중심이 되면 패거리를 짓게 돼요.

그러면 우리가 이미 아는 사실로 돌아오게 돼요. 현대 노동시장은 전통과 가족과 씨족의 굴레를 녹여 없앴어요. 현대 세계에서는 관계가 덜 중요해요. 그리고 덜 중요하기 때문에, 관계 안에서 훨씬 더 많은 걸 할 수 있어요. 관계가 더 자유로워졌어요. 숨 쉴 여유가 생겼어요.

다른 많은 것이 그렇듯, 이걸 처음 이해한 건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였어요.11 상업 사회에서 우정이 가능한가는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애덤 퍼거슨에게 진지한 관심사였어요. 구체적으로, 그들은 상업 사회가 우정을 가능하게 했다고 믿었어요. 비인격적인 시장과 관료제가 생기기 전의 나쁜 옛 시절에는 동맹이나 친족과의 개인적 유대를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그 결과 모든 개인적 관계는 거래였어요.

우리가 모두 자기 노동으로 먹고살 수 있게 되면, 이런 거래는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스미스가 보기에, 서로가 필요하지 않게 되자 더 나은 우정이 설 자리가 생겼어요. 서로의 필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공감’에서 나오는 우정이요. 그리고 개인 사이의 이 공감은 다시, 봉건 제도나 가족 집단의 경쟁하는 필요에 얽매이지 않는 더 보편적인 사회 도덕의 바탕이 될 터였어요.

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이며 개인주의적인 문화로 넘어온 역사적 전환의 한 부분일 뿐이지만, 중요한 부분이에요. 오늘날 우리가 물질적으로 독립해 살 수 있는 건 일 덕분이에요. 하지만 물질적 필요가 채워지더라도, 정체성과 소속에 대한 모든 필요를 개인적 관계에 기대어 채우는 건 비슷한 종류의 의존을 낳아요. 오스트랜더의 숙녀들에게서 그걸 볼 수 있어요. 삶이라는 묶음에서 비교적 비인격적인 일을 빼내면, 더 오래된 유대가 다시 고개를 들어요.

우리가 지금 그런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고 확신하지는 않아요. 기술과 문화 변화의 관계를 두고 거창한 주장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진심이었어요. 더 관계 중심적인 세계가 AI가 일으키는 가장 심각한 문제라면, 저는 분명 안도할 거예요. 그렇다고 그 세계를 고대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저는 제 일이 좋고,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좋아요. 언젠가 전자가 진보의 희생양이 된다면, 후자만큼은 살아남기를 바라요.

주

  1. 알렉스 이마스는 현재 구글 딥마인드의 AGI 경제학 디렉터예요. ↩

  2. 그렇다고 산업화가 반드시 노동의 존엄에 대한 재평가를 일으켰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 반대일 수도 있어요. 덜 논쟁적인 사실은, 현대의 노동 윤리가 산업화와 마찬가지로 18세기 영국에 뿌리를 두었고 19세기 미국에서 훨씬 강해졌다는 거예요. Daniel T. Rogers, The Work Ethic in Industrial America, 1850-1920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4). ↩

  3. Louis de Rouvroy, Duc de Saint-Simon, Memoirs of the Court of Louis XIV and of the Regency, trans. Bayle St. John (P.F. Collier & Son, 1910). ↩

  4. Antoine Lilti, The World of the Salons: Sociability and Worldliness in Eighteenth-Century Paris, trans. Lydia G. Cochrane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

  5. Susan Ostrander, Women of the Upper Class (Temple University Press, 1984). 인용하지는 말아 주세요. 하지만 그 도시는 클리블랜드가 거의 확실해요. ↩

  6. 오늘날의 초부유층은 우리 목적에 그다지 흥미롭지 않아요. 대부분 일을 하거나, 일하는 사람들과 폭넓게 어울리기 때문이에요. 1980년대는 부유한 여성이 어떤 직업이든 가져야 한다는 기대에서 자유로웠던 마지막 시기였을지도 몰라요. 걸프 국가의 시민권자 남성은 사정이 다를 수 있다고 들었지만, 그들에 관한 좋은 민족지 문헌은 아직 찾고 있어요. ↩

  7. Herbert J. Gans, The Urban Villagers: Group and Class in the Life of Italian-Americans (The Free Press of Glencoe, 1962). ↩

  8. 여기서는 갠스에 집중하지만, 영과 윌모트, 쿠앵도 자신들이 연구한 사람들에 대해 대체로 비슷한 주장을 했어요. ↩

  9. Claudia Strauss, What Work Means: Beyond the Puritan Work Ethic (Cornell University Press, 2024), 236–37. ↩

  10. 1970년대에 회계사가 되려면 고등학교 졸업장과, 수학을 좋아한다고 그럴듯하게 주장할 능력만 있으면 됐어요. ↩

  11. Allan Silver, “Friendship in Commercial Society: Eighteenth-Century Social Theory and Modern Sociology,”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95, no. 6 (1990): 1474–1504 참고. ↩

역자 주

  1. 박수 두 번(two cheers): E. M. 포스터의 에세이집 『민주주의를 위한 두 번의 만세(Two Cheers for Democracy)』에서 온 영어 관용구예요. 열렬한 세 번의 환호에는 못 미치는, 단서를 단 지지를 뜻해요. 노동 윤리를 마냥 찬양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한다는 뉘앙스예요. ↩

  2. 대피 덕(Daffy Duck): 워너 브라더스 애니메이션 「루니 툰」의 검은 오리 캐릭터예요. 자존심은 세고 툭하면 억울해하며 길길이 날뛰는 모습으로 유명해요. ↩

  3. 휘그주의(Whiggism): 19세기 영국에서 토리(보수파) 지주 계층과 맞서던 휘그당 계열의 자유주의 개혁 노선이에요. 트롤럽의 소설 속 지주 계층에게는 전통적 질서를 흔드는 변화의 상징이었어요. ↩

저자 소개: 클라라 콜리어(Clara Collier)는 Asterisk Magazine의 편집장이에요.

참고: 이 글은 클라라 콜리어가 2026년 9월 Asterisk Magazine 15호에 게시한 에세이를 번역한 글이에요.

원문: After Work, We’ll Have Each Other - Clara Collier, Asterisk Magazine (2026년 9월)

생성: Claude (Anthropic)

총괄: 존 (디노이저denoi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