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희소해질까?
구조 변화의 경제학과 탈상품 시대 노동의 미래
핵심 요약
AI가 상품 생산을 거의 공짜로 만들어도 일자리가 통째로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주장이에요. 경제학이 늘 말해 온 ‘구조 변화’와 인간 욕망의 비교적·모방적 성격을 결합하면, 희소성은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옮겨요.
- 희소성은 이동한다: 미래 AI 경제를 묻는 모든 질문은 ‘무엇이 희소해지는가’에서 시작해요. 스타벅스가 자동화를 되돌리고 바리스타를 늘린 것이 작은 단서예요.
- 소득 효과가 구조 변화의 대부분을 설명한다: 농업에서 제조업, 서비스업으로 이어진 이동의 75% 이상은 사람들이 부유해지며 원하는 것이 달라진 데서 나왔어요.
- 모방 욕망은 쉽게 포화되지 않는다: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원하는 비교적 욕망은 소득 탄력성이 높아요. 실험에서 배제 가능성만으로 지불 의사가 거의 두 배가 됐고, AI가 관여한 작품은 이 프리미엄이 절반으로 줄었어요.
- 일자리는 관계 부문으로 간다: 돌봄, 교육, 환대, 수공예처럼 사람 자체가 가치의 일부인 영역이 지출과 고용을 흡수해요. 그렇다고 노동소득분배율이 오른다는 주장은 아니에요.
• • •
스타벅스는 시가총액이 1,120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 기업이고, 현대 경제에서 가장 표준화된 제품을 팔아요. 커피 한 잔, 하다못해 화려한 스페셜티 음료도 기계화해서 똑같이 찍어 내기가 아주 쉬워요. 경제 전체가 곧 자동화되어 노동이 점점 정교해지는 자본으로 대체된다면, 스타벅스는 탄광의 카나리아가 되어야 마땅해요. 매장에서 노동을 덜어내고 자동화 자본으로 갈아 끼우는 기술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스타벅스는 지난 몇 년간 그렇게 했어요. 얇은 마진을 끌어올리려고 커피 제조 공정을 갈수록 자동화하고, 고객에게 전달하는 과정도 철저히 기계적으로 짜 놨어요. 그런데 자동화가 늘어나기는커녕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어요. 직원은 줄이고 자동화는 늘려 매장 경험을 효율화해 봤지만, 회사는 이것이 실수였다고 결론 내렸어요. CEO 브라이언 니콜(Brian Niccol)은 컵에 손으로 적어 주는 메모, 도자기 컵, “좋은 자리의 복귀” 덕분에 더 많은 고객이 “우리 카페에 앉아 머문다”고 말하며, “작은 디테일과 환대가 만족도를 좌우한다”고 했어요. 지금 스타벅스는 매장당 바리스타를 더 뽑고 자동화를 되돌리고 있어요.
경제학은 제약 아래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 곧 희소성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고급 AI가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다면, 기계가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생산을 아주 낮은 한계비용으로 해낼 수 있다면, 경제학은 쓸모가 없어질까요? 아니에요. 희소성은 여전히 남아요. 다만 중요해지는 희소성의 종류가 바뀌어요. 결국 고급 AI의 미래 경제에 관한 어떤 질문이든 답은 무엇이 희소해지는가를 가려내는 데서 시작해요. 그 답이 나오고 나면 나머지 분석은 꽤 단순해요. 이 글에서는 자동화가 인간 생산의 많은 부분, 어쩌면 전부를 복제할 수 있을 때 무엇이 희소해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일자리를 만들어 낼지를 살펴보려 해요.
산업화 이전에는 물건과 그것을 만든 사람을 떼어 놓기가 어려웠어요. 내 셔츠를 짠 직조공, 내 빵을 구운 제빵사는 직접 아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의 기술과 평판이 파는 물건에 묶여 있었죠. 경제적 거래에는 소비 경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뚜렷한 사회적 요소가 있었어요. 산업적 생산 과정은 수공을 표준화된 반복 단계로 쪼개면서 이를 바꿔 놨어요. 노동자가 미리 정해진 정형화된 절차를 따라 일하게 되면서 자본주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냈는데, 바로 상품 형태(commodity form)예요. 제품의 가치가 만든 사람과 분리되어 제품 자체에 놓이는 형태죠. 탁자는 탁자고 휴대폰은 휴대폰이에요. 지금 이 글을 읽는 화면도 한 나라에서 설계되고, 다른 나라에서 제조되고, 전 세계에서 온 부품으로 만들어졌어요. 하지만 이 가운데 어느 것도 기기를 사서 쓰는 경험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요.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일부러 격한 언어로 묘사했어요. 그에 따르면 상품 형태는 착취, 즉 노동자가 만들어 낸 가치보다 적게 지급할 수 있는 능력 위에 서 있었어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 생산 과정이 소외, 곧 노동자를 자기 노동의 산물에서, 만드는 과정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서로에게서 떼어 놓는 일에 기반했기 때문이고요. 한 사람의 수공이던 것이 추상적인 ‘노동력’, 원자재처럼 사고팔리는 생산 요소가 됐어요. 마르크스는 이것을 자본주의의 가장 깊은 병리로 봤어요. 하지만 경제학자들에게, 그리고 세상 전반에게 상품 형태는 놀라운 번영의 엔진이었어요. 생산이 더는 특정한 사람에게 묶여 있지 않으니 쪼개고, 재조직하고, 바다 건너로 실어 나르고, 적은 자원을 막대한 부로 바꾸는 규모로 키울 수 있었어요. 두 가지가 동시에 참이었던 셈이에요. 상품 형태는 엄청난 부와 번영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어떤 특정 제품 뒤에 있는 사람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대체 가능한 존재로 만들었어요.
AI가 경제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대부분 사람이 떠올리는 그림이 이거예요. 기계가 사람이 하는 건 뭐든 만들 수 있다면, 준비서면을 쓰고, 이미지를 생성하고, 노래를 작곡하고, 영상의학 스캔을 보고 진단을 내릴 수 있다면, 인간은 생산의 모든 국면에서 대체되고 일자리는 그냥 사라질 거라는 그림이죠. 노동이 자본으로 대체된다는 거예요. 데이비드 오터(David Autor)와 닐 톰슨(Neil Thompson)은 최근의 중요한 논문에서 여기에 반론을 펴요. AI는 일자리를 단순히 없애는 게 아니라 인간 전문성의 경제적 가치를 재편한다는 거예요. 이들의 틀은 한 직업 안의 업무를 전문 업무와 비전문 업무로 나눠요. 자동화가 단순한 업무를 걷어내면(회계 소프트웨어가 부기 사무원에게 한 것처럼) 남은 일은 더 전문화되고, 임금은 오르고, 자격을 갖춘 노동자는 줄어요. 반대로 어려운 업무를 걷어내면(재고 관리 시스템이 창고 노동자에게 한 것처럼) 일자리는 접근하기 쉬워지고, 고용은 늘고, 임금은 떨어져요. 같은 기술인데, 직무의 어느 부분이 자동화되느냐에 따라 노동시장 결과는 정반대가 돼요.
하지만 오터와 톰슨은 더 냉혹한 가능성도 따져 봐요. AI가 발전해서 인간 전문성이 경제적 가치를 완전히 잃는 경우예요. 이 시나리오에서 AI는 노동의 희소성을 없애고,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이 한때 “견딜 수 없는 풍요”라 부른 상태를 만들어요. 생산의 자동화는 더 이상 인력 전환을 관리하는 문제가 아니게 돼요. 그런 문제라면 과거 자동화의 선례에 기댈 수 있겠지만요. 우리는 지금껏 사회를 지탱해 온 노동시장 없이도 사회 조직, 소득 분배, 민주주의의 안정을 유지할 수단을 마련해야 해요.
저는 다른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려 해요. 자동화가 인간의 생산과 그 결과물인 상품을 복제할 수 있지만(이건 엄청난 가정이에요!!!) 인간 노동은 사라지지 않는 경우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많은 분석이 경제를 주어진 것으로 놓아요. 일자리 집합이 있고, 경제가 생산하는 재화·서비스 집합이 있다고요. 같은 재화·서비스를 더 싼 기계가 만들 수 있다면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고 일자리는 사라진다는 식이죠. 하지만 구조 변화의 경제학에 인간 선호의 깊은 특성을 더해 보면 다른 그림이 나와요. 사람들은 부유해질수록 상품을 더 많이 원하기만 하는 게 아니에요. 통상적 의미의 상품이 아닌 것을 원해요. 관계, 지위, 배타성 같은 제품의 사회적 측면, 르네 지라르(René Girard)가 욕망의 모방적 속성이라 부른 것은 기본 욕구가 채워지고 나면 훨씬 더 중요해져요. 그리고 이런 속성에 대한 수요가 생산 과정에 인간적 요소를, 그와 함께 일자리를 다시 불러들여요.
이 말이 맞다면 AI는 상품 경제를 자동화하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새로운 무언가, 곧 탈상품 경제를 불러와요. 지출이 점점 더 큰 몫이, 가치를 제공한 사람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재화와 서비스로 향하는 경제예요. 미국 노동력의 40%를 농장에서 공장과 사무실로 내보낸 바로 그 경제적 힘이, 이번에는 노동자를 자동화 가능한 상품 생산에서 빼내 제가 관계 부문(relational sector)이라 부를 곳으로 옮길 거예요. 관계 부문이란 인간의 비중이 높고, 출처(provenance)가 풍부하며, 때로는 수공예적인 경제 영역으로, 인간적 측면이 재화나 서비스 가치의 일부인 곳을 말해요. 희소성의 경제학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길 뿐이에요.1
이 주장이 처음 나온 건 아니에요(저, 세브 크리어(Seb Krier)의 이 글, 애덤 오지멕(Adam Ozimek)의 이 글, 필립 트램멜(Philip Trammell)의 이 글 참고). 이 글의 목표는 이 주장을 정밀하게 다듬는 거예요. 먼저 경제가 거대한 생산성 충격에 역사적으로 어떻게 반응해 왔는지, 곧 구조 변화의 경제학을 짚어요. 그다음 새로운 재료로, 행동경제학에 바탕을 둔 미시적 기초를 소개해요. 배타성과 지위에 대한 욕구를 낳는 모방적 선호가 왜 수공예품(인간적 요소가 가치와 직결된 재화)의 소득 탄력성을 유독 높게 만드는지를 설명하는 틀이에요. 이어서 간단한 모형을 풀어 깔끔한 예측 하나를 끌어내요. 자동화된 부문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관계 부문은 늘어난다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이전 글에서 던졌던 질문, 곧 AI가 마이너스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로 돌아와요. 이 틀을 적용하면 그 우려는 한층 줄어들어요.
여기서 제 주장은 노동 몫 이야기의 가장 강한 버전보다 좁아요. 노동의 총 분배율이 반드시 오른다거나 지금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자동화가 진행되면 줄어들 수도 있어요. 제 주장은 부유한 경제의 부문 간 재배분에 관한 거예요. AI가 상품 생산을 값싸게 만들면 지출과 고용이 소득 탄력성이 높고 인간의 참여가 여전히 가치를 지니는 부문으로 쏠린다는 거죠. 다시 말해 노동소득분배율이 떨어져도 관계 부문은 여전히 경제의 상당한 부분으로 남을 수 있어요. 그리고 중요하게도, 관계 부문 수요가 가진 고유한 성질 덕분에 노동은 경제 전체에서 상당한 몫을 유지해요(0으로 줄지 않아요). 부속 기술 노트에 이 글의 주장을 형식화한 버전이 있으니, 더 정밀한 경제학적 논증이 궁금하시다면 읽어 보세요.
다만 이 틀은 소득 상승이 전환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선진국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어요. 부유한 나라에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으로 경제를 일궈 온 개발도상국에는 그림이 더 복잡하고, 잠재적으로 더 우려스러워요.
농장에서 공장으로, 그리고…
경제학에는 한 부문이 새로운 기술로 극적으로 생산적이 될 때 일어나는 일에 붙인 이름이 있어요. 구조 변화(structural change)예요. 대표적인 예가 농업이에요. 1900년에 미국 노동력의 약 40%가 농사를 지었어요. 지금은 2%도 안 돼요. 그렇다고 사람들이 먹기를 멈췄을까요? 아니에요, 오히려 훨씬 더 많이 먹어요. 대규모 자동화가 농부를, 나중에는 공장식 농장을 훨씬 더 생산적으로 만들었고, 농업 생산은 폭발적으로 늘었으며 가격은 떨어졌어요. 하지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으니, 부유해질수록 소득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고 노동자는 제조업으로, 이어서 서비스업으로 넘어갔어요. 가격 하락과 다른 부문으로의 노동 재배치가 동시에 일어나자, 어쩌면 직관에 반하는 결과가 나왔어요. 더 생산적이고 자동화된 부문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이 공급하는데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진 거예요. 비용이 떨어지지 않았고 실제로는 오른 덜 생산적인 부문, 곧 서비스업은 경제의 더 큰 부분이 됐어요. 이것이 보몰의 비용 질병(Baumol’s cost disease)T1이고, 아래 그림 1에서 대만의 변화를 볼 수 있어요.
이 과정의 형식적 경제학은 디에고 코민(Diego Comin), 다니알 라시카리(Danial Lashkari), 마르티 메스티에리(Martí Mestieri)가 2021년 Econometrica 논문에서 아름답게 정리했어요(이 논문을 알려 준 피터 매크로리(Peter McCrory)에게 감사해요). 이들의 핵심 통찰은 수요가 비동조적(nonhomothetic)T2이라는 거예요. 사람들은 부유해진다고 모든 것을 똑같은 비율로 더 사는 게 아니에요. 소득 탄력성이 높은 부문, 곧 소득보다 수요가 더 빨리 늘어나는 재화 쪽으로 지출 비중을 키워요. 농업은 소득 탄력성이 낮아요(먹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으니까요). 서비스업은 높아요(더 좋은 식당, 더 몰입감 있는 경험, 더 세심한 의사는 언제나 있으니까요). 이 틀은 농업의 쇠퇴, 제조업의 ‘낙타 등’ 모양 상승과 하락, 서비스업의 꾸준한 상승이라는 역사적 데이터와 잘 맞아요.
코민 등의 핵심은 주된 메커니즘이 보몰의 비용 질병만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자동화된 부문의 가격이 내려가면 실질소득이 오르고, 실질소득이 오르면 수요의 무게중심이 소득 탄력성이 높은 부문으로 바뀌어요. 그 부문들이 상대적으로 자동화가 어려운 채로 남아 있으면 보몰의 비용 질병이 이 이동을 더 강화하고요. 자동화가 ‘어려운’ 이유는 과거처럼 기술적 제약일 수도 있고, 애초에 자동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부문 가치의 기반이어서일 수도 있어요. 자동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가치 제안의 일부인 관계 부문이 그래요. 다시 말해 부문 간 자동화 속도가 비슷하더라도 부유한 가계가 돈을 더 쓰고 싶어 하는 곳이 관계 부문이라면 그 부문은 여전히 더 중요해질 거라고 예상할 수 있어요.
이것이 AI가 일자리를 바꾸는 일과 어떻게 이어질까요? 코민, 라시카리, 메스티에리는 관찰된 구조 변화 패턴의 75% 이상을 소득 효과가 설명한다고 추정해요. 자동화된 부문이 싸지니 사람들이 다른 걸 산다는 표준적 설명, 곧 가격 효과는 4분의 1 정도만 설명해요. 지배적인 힘은 사실 꽤 단순해요. 사람들은 부유해질수록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원한다는 거예요.
이는 부유한 가계가 돈을 쓰는 방식에서 이미 드러나요. 2022년 미국 노동통계국(BLS) 소비지출조사에서 소득 최상위 5분위 가계의 총지출은 최하위 5분위 가계의 약 4.3배였어요. 하지만 대면 외식, 오락, 교육처럼 관계적 요소가 강한 범주에서는 비율이 훨씬 커요. 즉 부유한 가계는 단지 물건을 더 많이 사는 게 아니에요. 인간적 요소, 경험, 사회적 의미가 더 중요한 재화와 서비스에 지출 비중을 더 둬요. 요아힘 후버(Joachim Hubmer)가 「선호와 기술의 경주(The Race Between Preferences and Technology)」에서 기록한 패턴도 정확히 이거예요. 그는 소비 지출 전체를 아우르는 가계 데이터를 이용해, 소득이 높은 가계일수록 총소비에서 노동 집약적 재화·서비스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쓴다는 것을 보여요. 그리고 이를 비동조적 선호의 증거로 해석해요. 다른 기술적 힘들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와중에도, 경제 성장이 소득 효과를 통해 노동 집약적 부문의 수요를 끌어올린다는 거예요.
고급 AI가 광범위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비용을 극적으로 낮춘다면, 이 논리는 구조적 변환을 예측해요. 자동화된 부문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소득 탄력성이 높은 부문은 커져요. 그렇다면 질문은 이거예요. AGI 이후 세계에서 어떤 부문과 재화가 높은 소득 탄력성을 갖게 될까요?
관계 부문과 욕망
여기서는 인간 선호와 욕망을 결정하는 요인을 더 가까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경제학자들은 보통 선호가 고립 속에서 형성되는 것처럼 수요를 모형화해요. 어떤 재화, 서비스, 경험에서 얻는 ‘효용’은 그 쾌락적 속성(예컨대 커피 맛이 얼마나 좋았는지, 주문하고 얼마나 빨리 받았는지)으로 결정된다고 보죠.2 사람들의 예산 제약이 의식주 같은 기본 욕구를 충족하는 데 빠듯하게 걸려 있을 때는 이 모형이 말이 돼요. 하지만 그런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다른 힘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빚기 시작하고, 나아가 지배적이 되기까지 해요. 르네 지라르는 이를 모방 욕망(mimetic desire)이라 불렀어요. 우리는 대상을 그 자체의 속성만으로 욕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욕망하기 때문에 욕망한다는 생각이에요. 우리는 남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고, 남들이 그것을 가질 수 없을 때 더욱 원해요. 지위, 사회적 자본, 평판 같은 것을 위해서요. 욕망은 사람과 대상 사이의 관계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욕망하는가의 함수이기도 해요.
이 생각은 지라르만의 것이 아니고, 인간 본성에 관한 수 세기의 사유를 관통해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지배욕(libido dominandi)을 욕망을 규정하는 특징으로 썼어요. 그에게 사람들의 동기는 다른 이들에게는 같은 재화가 허락되지 않는 데서 오는 소유의 쾌락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어요.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영예와 명예를 위한 경쟁을 인간 갈등 설명의 중심에 놨어요. 사람들은 물질적 안락뿐 아니라 남들 위에 서는 ‘탁월함’(eminence)에도 이끌리는데, 이 충동은 본질적으로 비교에 기반하기 때문에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고요. 루소는 더 나아갔어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그는 기본적인 자기 보존 본능인 아무르 드 수아(amour de soi)와, 남들에게 우월하게 여겨지고 싶은 욕구인 아무르 프로프르(amour propre)를 구분했어요. 아무르 프로프르는 사회생활의 엔진이며, 루소에게는 사회생활이 가진 불행 대부분의 원천이에요. 사람들이 서로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우월하다고 느낄 때 기쁨을, 열등하다고 느낄 때 고통을 얻고, 이 비교는 끝없이 위로 치솟기 때문이에요.
문화비평가 데이브 히키(Dave Hickey)는 이를 더 평이한 말로 표현했어요. 훌륭한 에세이 모음집 『Air Guitar: Essays on Art & Democracy』(알려 준 팀 오라일리(Tim O’Reilly)에게 감사해요)에서 히키는 선진 경제의 사람들이 흔히 물건에 기능적 가치 이상의 돈을 낸다고 지적해요. 그가 드는 예 하나가 아르마니 정장이에요. 아르마니를 사는 사람 가운데 더 따뜻하게 지내는 방법을 사는 사람은 없어요. 그들은 브랜드를, 아르마니 뒤에 있는 이야기와의 관계를, 그 의미와 평판을, 다른 사람들이 그게 뭔지 알고 갖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사요. 히키의 요점은 욕망이 어떤 제품이냐에만 달린 게 아니라 그 제품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도 달려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의미, 곧 출처는 상품화하고 대량생산하기가 어려워요. 재화가 희소하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것에 의미를 주니까요. 아르마니는 기성복 라인을 만들 때 산업용 기계를 쓰지만, 고급 정장에는 상당한 인간의 손길이 들어가요. 기계가 발전한 지금, 산업 공정은 고급 정장의 기능적 측면은 물론 미적인 면까지도 충분히 복제할 수 있어요. 그런데도 사람이 공정에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 정장에 가치를 주기 때문이에요.
이 모방적이고 관계적인 욕망의 차원이 코민 등의 틀과 무슨 상관일까요? 그것이 비교적이라서 쉽게 포화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런 속성을 가진 재화는 소득이 오를 때 소득 탄력성이 특히 높을 거예요.
크리스토프 마다라스(Kristof Madarasz)와 저는 기본적인 경제적 교환의 맥락에서 선호의 모방적 차원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내놨어요. 먼저 어떤 재화에 대한 개인의 욕망이 그것을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사람이 많을수록 커지는 형식적 모형을 만들었어요. 이 모형은 진정한 배제가 있을 때, 곧 특정 대상에 대한 접근이 희소하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데도 갖지 못할 때 사람들이 그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길 거라고 예측해요. 실험에서는 무작위로 뽑힌 일부 사람들이 그 제품을 살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자, 제품은 똑같은데도 지불 의사가 대략 두 배가 됐어요(아래 그림 2). 이것은 지위 과시(참가자는 익명이었어요)도, 희소성 휴리스틱(배제는 무작위였어요)도 아니었어요. 오직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싶다는 순수한 선호에서 나온 거예요.
우리는 모방적 선호의 함수로서 실제 수요곡선을 이끌어 내는 실험도 했어요. 배제의 가능성이 커질수록 수요곡선이 오른쪽으로 크게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그림 3). 그리고 효과가 작지 않아요. 지불 의사의 중앙값이 이번에도 거의 두 배가 됐어요!
AI와의 결정적 연결 고리는 그렐린 맨델(Graelin Mandel)과 함께한 새 연구에서 나와요. 우리는 AI의 관여가 재화의 인지된 배타성을 약화시킨다는 걸 발견했어요. AI가 관여한 물건은 본질적으로 재생산 가능하고 유일하지 않다고 인식되는 거예요. 사람들은 AI 관여 정도를 달리 설명한 실물 아트 프린트에 입찰했어요. 사람이 만든 작품은 배타성(사본 한 점 대 여러 점)에서 가치가 44% 올랐지만, AI가 생성한 작품은 그 절반도 안 되는 21%만 올랐어요. AI가 관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사본이 몇 점 있다고 설명하든 상관없이, 그 작품은 언제든 재생산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는 뜻이에요.
이 얘기가 예술가와 사치스러운 수공예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다른 맥락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기계적 복제가 파괴하는 예술 작품의 ‘아우라’가 그거예요. 그런데 경제적 논리는 예술 너머로 확장돼요. 교사, 간호사, 치료사, 보육 노동자, 트레이너, 환대 업종, 성직자, 가이드, 여러 형태의 지역 서비스처럼 인간적 요소가 가치에 필수인 모든 범주에 적용돼요. 이 모든 경우에 인간은 생산 과정의 단순한 투입물이 아니에요. 그들의 판단력, 주의, 기억, 따뜻함, 존재가 가치의 불가분한 일부예요. 세브 크리어가 표현한 대로, 이런 경우는 탈희소성 세계에서도 출처가 희소한 채로 남는 사례예요.
이것이 구조 변화에 중요한 까닭은 선호의 모방적 요소가 본질적으로 소득 탄력적이기 때문이에요. 가난할 때는 지출 대부분이 생산자가 누구인지 상관없는 필수품으로 가요. 부유해질수록 더 큰 몫이, 단지 기능적 제품만이 아니라 이야기, 희소성, 남들도 원하는 것을 가졌다는 느낌을 사는 재화로 가요. 이것이 관계 재화와 서비스의 소득 탄력성이 높은 이유예요. 소득이 오르면 배타성 프리미엄이 총가치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고, 그 프리미엄은 인간이 만든 재화가 제공할 수 있는 거니까요.
상품 경제의 종말?
상품 형태로 돌아가 보죠. 앞서 정의했어요. 제품을 만든 사람에게서 추상해 내는 것, 산업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한 바로 그것이라고요. AI가 상품 자체를 만들 수 있게 되면 이것은 어떻게 될까요?
뻔한 답은 상품 형태가 논리적 종착점에 이른다는 거예요. 인간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제품이죠. 하지만 구조 변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나오는, 덜 뻔한 답은 이래요. AI는 상품 형태를 완성할 뿐 아니라, 상품 형태(엄밀한 의미에서의)가 경제 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일도 일으켜요.
메커니즘을 더 정확히 말하면 이래요. AI가 상품 생산을 자동화하면 그 부문의 가격이 내려가요. 그러면 실질소득이 올라요. 사람들이 부유해질수록 더 원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관계 부문에 치우쳐 있다면 수요는 그쪽으로 이동해요. 이어서 보몰의 비용 질병이 결과를 증폭시켜요. 관계 부문이 자동화하기 더 어려운 채로 남으면 상대적으로 더 비싸지고 총지출의 점점 더 큰 몫을 흡수해요.
하지만 AI 자동화의 맥락에서 보몰의 비용 질병은 결함이 아니라 장점이에요. 사프런 황(Saffron Huang)이 최근 AI 주도 구조 변화의 긍정적 미래 가능성을 다룬 아주 잘 짜인 글에서 이 점을 짚었어요.
“AI가 더 크게 발전하지 않아도 가능한 긍정적 시나리오를 소개할게요. ‘지금에서 그곳까지’의 경로를 얼버무리지 않고 분명히 그려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부정적으로 시작해서 긍정적으로 끝나요(정말이에요). 경기 침체로 채용이 느려지고…” — Saffron Huang, X 게시물(2026년 4월 2일; 원문에는 이 글이 Ethan Mollick의 “AI 랩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가는 미래가 우리 대부분에게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설명하는 일을 정말 못 해 왔다”는 게시물을 인용한 형태로 실려 있어요)
사람이 하는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비싸지는 것은 더 이상 예산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의 해법이 돼요. 자동화에 저항하는 ‘정체된’ 부문이야말로 지출과 고용이 늘어나는 곳이에요. 상품 부문이 싸지기 때문에 관계 부문이 비싸지고, 바로 그것이 사람들을 계속 고용 상태로 있게 해요.
이게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요? 사프런은 그럴듯하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렸어요. 자동화된 제조업이 가져온 물질적 풍요로 재화는 저렴해져요. 대부분 사람의 지출은 사람이 이끄는 서비스로 가고, 오늘날의 사치가 미래 소비자의 기본이 돼요. 상품 생산이 자동화되면서 소득과 고용은 소득 탄력성이 높은 부문, 곧 제가 관계 부문이라 부르는 곳으로 흘러가요. 예술은 물론 돌봄, 교육, 환대, 치료, 개인 서비스, 수공예, 공동체까지, 인간적 요소가 가치의 일부인 곳이에요. ‘정체된’ 부문은 바로 자동화할 수 없기 때문에 점점 더 큰 지출과 일자리를 흡수해요. 일자리는 거기에 있어요. 이 과정의 수학적 모형이 궁금하시면 여기에 풀어 놨어요. 아래는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 주는 잠재적 그림이에요.
물론 마르크스라면 이 결과를 이상하게 여겼을 거예요. 하지만 조심하고 싶어요. 뚜렷한 인간적 요소가 담긴 제품이 탈상품화된 노동과 같은 것은 아니에요. 정장을 지어 주는 재단사나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교사도 여전히 자본에 관계적 노동을 팔고 있을 수 있어요. 제품의 인간적 측면이 경제적으로 더 두드러지게 되더라도, 생산의 사회적 관계는 완전히 자본주의적으로 남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제 주장은 더 좁아요. AI는 상품 부문이 지출에서 차지하는 몫을 줄이고, 인간적 요소가 여전히 눈에 보이고 가치 있는 재화·서비스로 가는 몫을 늘릴 수 있어요. 이것은 마르크스적 의미에서 상품화의 종말이 아니에요. 수요 구성의 이동이에요. 그래도 노동시장에는 의미가 있어요. 구조 변화의 방향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체하는 일보다 더 개인적이고, 더 관계적이고, 덜 대체 가능한 일 쪽을 향할 수 있으니까요.
수요 붕괴 다시 보기
이건 제가 전에 쓴 적이 있고, 특히 시트리니 에세이가 나온 뒤로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주제와 이어져요. 고급 AI가 마이너스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다룬 제 에세이에서, AI가 노동 대부분을 자동화해 임금 몫이 무너지면 경제가 위축될 수 있음을 보였어요. 메커니즘은 이래요. 돈 있는 사람들(자본가)은 이미 포만 상태이고, 돈 없는 사람들(실직한 노동자)은 아무것도 살 수 없어요. 재화와 서비스를 사서 경제를 돌아가게 해 온 사람들이 그럴 돈이 없어지니 수요가 붕괴해요.
그 글의 핵심 방정식은 이거였어요.
Y = κ0(P) ÷ (1 − AMPC(sL))
노동소득분배율 sL이 떨어져 승수가 줄어드는 속도가 (포만 때문에) 기초 소비 κ0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빠르면 수요가 붕괴해요.
모방 욕망은 이 시나리오에 맞서요. 수요의 이 측면은 빨리 포화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앞서 강조했듯 지위와 배타성에 대한 선호는 비교적이어서, 사람들은 소득이 오를수록 지출을 이를 충족하는 재화로 계속 재배분해요. 비동조적 CEST3 틀은 지출 비중이 소득에 따라 계속 이동하도록 허용해서 이를 포착해요. 이것이 어디에도 문자 그대로 상한이 없다는 뜻은 아니에요. 시간 제약과 다른 희소한 보완재는 여전히 중요해요. 하지만 단순한 포만 이야기가 시사하는 것보다 경제에 훨씬 큰 배출구가 있다는 뜻이에요.
자동화된 재화에 대한 수요가 한계에 부딪히더라도 관계 재화에 대한 수요는 매우 넓은 범위에서 계속 커질 수 있어요. 구조적 재배분은 배출구 역할을 해요. 경제는 모든 사람이 자동화된 물건을 계속 더 사 주기를 요구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부유해질수록 더 신경 쓰는 영역으로 지출이 이동하기만 하면 돼요.
노동의 미래
모형이 맞다면 미래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는 AI 시스템을 감시하거나 프롬프트를 엔지니어링하는 일이 아닐 거예요. 그건 자동화 부문의 과도기적 역할이에요. 지속될 일자리는 인간적 요소가 곧 상품인 관계 부문에 있어요.
이미 존재하고 늘어나는 일자리도 있어요. 간호사, 치료사, 교사, 부티크 피트니스 강사, 개인 셰프, 맞춤 양복 재단사, 크래프트 맥주 양조사, 라이브 공연자, 영적 안내자, 보육 노동자, 그리고 여러 종류의 환대·돌봄 노동이요. 새로 생겨나는 일도 있어요. 경험 디자이너, 인간-AI 협업 예술가, 출처 인증가, 커뮤니티 큐레이터 같은 것들이요. 아직 발명되지 않은 일도 많아요. 오늘날 사람들이 가진 직업 열 개 중 여섯 개가 1940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요.
이 얘기를 하면 가장 자주 받는 반박은 “하지만 모두가 창의적인 건 아니고,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순 없잖아요”예요. 저는 이게 질문의 요지를 오해한 거라고 생각해요. 피카소가 될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이 개입했기 때문에 제품이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가 만든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사람이 되면 돼요. 구조 변화의 경제학은 기술이 한 종류의 생산을 싸게 만들 때 경제가 붕괴하지 않고 변모한다고 말해 줘요. 기술이 싸게 만들 수 없는 것 중심으로 재편돼요. AI의 경우 그것들은 바로 인간의 참여가 고유하고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갖는 것들이에요.
다른 관점
마지막으로 다른 관점을 하나 살펴보려 해요. 필립 트램멜의 에세이는 노동이 사치재가 되는 미래의 가능성을 따져요. 트램멜이 묻는 것은 자본이 쌓이고 기계가 만든 상품의 종류가 늘어나는 극한에서 노동의 총 몫이 높게 유지되는지에 관한 점근적 질문이에요. 이 글의 초점은 달라요. 부유한 경제에서 AI가 상품 생산을 싸게 만들면 부문별 지출과 고용은 어떻게 되느냐는 거예요.
그 질문에 대해서는 더 넓은 역사적·이론적 관점을 취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첫째, 구조 변화의 증거에 따르면 소득 효과가 대부분의 일을 해요. 지배적인 역사적 패턴은 생산성이 빠르게 오르는 부문이 싸지면서 노동을 내보낸다는 것만이 아니에요. 사회가 부유해질수록 지출을 다른 종류의 재화로 재배분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코민, 라시카리, 메스티에리의 핵심 결과예요. 이들의 모형은 농업의 쇠퇴, 제조업의 낙타 등 모양 상승·하락, 서비스업의 장기 상승을 설명하도록 만들어졌고, 소득 효과가 한 나라 안의 부문 재배분 대부분을 설명한다는 것을 발견해요. 트램멜은 표준 거시 모형이 지나치게 뭉뚱그려 집계하고 흔히 동조적(homothetic) 선호를 가정하기 때문에 노동이 계속 중요할 가능성을 과소평가한다고 짚는데, 아주 훌륭한 지적이에요. 하지만 제 생각에 적절한 질문은 총 노동소득분배율이 오르느냐가 아니에요. 오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적절한 질문은 상품 생산이 싸진 뒤 어떤 부문이 지출과 고용을 흡수하는가, 그리고 노동이 재배치되는 그 부문이 여전히 경제의 상당한 부분으로 남는가예요.
후버는 이 점에서 도움이 돼요. 그는 두 주장이 서로 갈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거든요. 소득이 높은 가계는 노동 집약적 재화·서비스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쓰기 때문에, 다른 기술적 힘들이 총 노동소득분배율을 끌어내리는 와중에도 성장 자체가 수요를 노동 함량이 높은 부문 쪽으로 기울여요. 그리고 노동이 경제의 상당한 부분으로 남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부유한 사람들(예컨대 억만장자)이 오늘날 시간과 돈을 어디에 쓰는지를 보면 돼요(이 점을 짚어 준 톰 커닝엄(Tom Cunningham)에게 감사해요). 물론 자본과 비관계적 재화에도 많이 쓰지만, 시간과 돈의 상당한 덩어리는 ‘관계적’ 상품에 가요. 부자들은 수제 옷을 사고, 아무개가 직접 만든 수제 예술품을 사고, 손으로 고르고 손으로 조리한 음식을 먹고, 자기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고 논의되도록 여러 플랫폼에서 (아마도 너무 많은) 시간을 써요. 르네 지라르라면 이것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 욕망의 기본 속성 때문이라고 말할 거예요.
둘째, 수공업 쇠퇴의 역사는 신중하게 읽어야 해요. 지난 두 세기 동안 전통적인 수공업 고용이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것 자체가 관계 부문 수요가 약하다는 증거는 아니에요. 산업화가 한 일은 수많은 수공업 제품의 기능적 산출물을 훨씬 싼 상품으로 대체한 거예요. 기계로 만든 셔츠, 의자, 축음기는 핵심 소비 욕구를 옛 비용의 극히 일부로 충족할 수 있었고, 대부분 가계는 예산 제약이 여전히 빡빡해서 더 싼 상품이 이겼어요. 따라서 그 역사적 패턴은 제 주장과 모순되지 않아요. 문제는 상품이 충분히 싸진 뒤 어떻게 되느냐예요. 구조 변화는 기본적인 상품 소비가 싸지고 소득이 충분히 오르면 지출이 다시, 이번에는 인간적 요소 자체가 가치의 일부인 부문으로 넘어간다고 시사해요. 그래서 수공업자의 역사적 쇠퇴가 이 문제의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더 긴 과정의 한 단계라고 봐요.
마지막으로, 인간적 재화의 범주는 예술가와 진정성 재화보다 훨씬 넓어요. 교육, 돌봄, 환대, 치료, 여러 지역 서비스는 이 글의 다른 곳에서 설명한 이유로, 서비스의 가치가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과 점점 더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범주예요. BLS 소비지출조사에 따르면 소득 최상위 5분위 가계는 이런 관계적 범주에 소득이 낮은 소비자보다 훨씬 많이 지출하고, 지금도 이 부문들은 경제에서 작은 부분이 아니에요. 합치면 미국에서 5천만 명 가까이를 고용해요. 이 숫자는 AGI 이후에도 관계 부문이 경제에서 상당한 몫을 차지하리라는 주장에 어느 정도 힘을 실어 줘요.
세브 크리어, 크리스토프 마다라스, 그렐린 맨델은 이 에세이의 생각을 빚어 줬어요. 톰 커닝엄, 조 히치그(Zoe Hitzig), 사프런 황, 피터 매크로리, 팀 오라일리도 훌륭한 의견과 대화로 도와줬어요. 감사드려요.
주
-
인간 노동이 희소하게 남는 유일한 것이 될 거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점은 짚어 둘게요. 토지, 에너지, 컴퓨트, 그 밖의 고정 또는 준고정 투입물도 소득을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어요. 제 주장은 인간 노동이 더는 지배적인 희소 요소가 아니더라도, 수요가 인간적 요소가 가치의 일부인 부문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여전히 경제의 상당한 부분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뿐이에요. ↩
-
경제학자들이 선호의 사회적 차원을 완전히 무시해 왔다는 뜻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애커로프와 크랜턴(Akerlof and Kranton)의 정체성 경제학, 알베르토 비신(Alberto Bisin)의 문화가 선호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등 많은 연구가 있어요. 맥락 효과가 의사결정과 믿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모형화해 온 행동경제학의 오랜 전통도 있고요. ↩
역자 주
-
보몰의 비용 질병(Baumol’s cost disease): 경제학자 윌리엄 보몰이 짚은 현상이에요. 생산성이 거의 늘지 않는 서비스업(교육, 돌봄, 공연 등)도 생산성이 빠르게 오르는 제조업과 비슷하게 임금이 올라야 인력을 구할 수 있어서, 서비스의 상대 가격은 계속 비싸져요. ↩
-
비동조적(nonhomothetic) 선호: 소득이 두 배가 되어도 모든 재화의 소비가 똑같이 두 배로 늘지 않는 선호를 말해요. 소득이 오르면 식료품 지출 비중은 줄고 서비스 지출 비중은 늘어나는 식이에요. 반대로 모든 지출이 같은 비율로 늘면 ‘동조적(homothetic)’이라고 해요. ↩
-
CES: 대체탄력성이 일정한 함수(Constant Elasticity of Substitution)의 약자로, 여러 재화나 부문 사이의 지출 배분을 나타내는 데 흔히 쓰는 수식 형태예요. ↩
저자 소개: Alex Imas는 행동경제학자로, AI와 기술 변화의 경제학을 다루는 뉴스레터 『Ghosts of Electricity』를 쓰고 있습니다.
참고: 이 글은 Alex Imas가 2026년 4월 15일 뉴스레터에 게시한 에세이 전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에 삽입된 X(트위터) 게시물은 원문 캡처에 미리보기 일부만 남아 있어 그 범위만 옮겼습니다. 원문의 표기 오류(‘Renee Gigard’ 등)는 바로잡아 옮겼습니다.
원문: What will be scarce? - Alex Imas, 『Ghosts of Electricity』 (2026년 4월 15일)
생성: Claude (Anthr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