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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은 어떻게 중국의 급진적 기술 굴기를 이끄는가

게시일: 2026년 8월 23일 | 원문 작성일: 2026년 8월 22일 | 저자: Yinfi | 원문 보기

낡은 수묵화 두루마리의 갈라진 틈에서 솟아난 붉은 실 한 가닥을 안경 쓴 엔지니어가 들어 올리고, 실이 어두운 회로기판 도시 위로 거대한 원을 그리며 되돌아오는 16비트 픽셀 아트

핵심 요약

중국에서 나고 자라 영국으로 건너간 작곡가 Yinfi가, 중국의 기술 굴기 밑바닥에 깔린 ‘백년국치(百年國恥)’ 서사를 해부해요.

  • 딥시크의 모순: 서방 기술 생태계에 절박하게 의존하는 엔지니어들이, 동시에 그 생태계를 해체하겠다고 결심하는 역설이 한 세대 전체를 관통해요.
  • 서사는 후대에 조립되었다: 아편전쟁 이후 70년 동안 ‘국치’라는 말은 보통 사람들의 어휘에 없었어요. 집단적 굴욕감은 청일전쟁기 일본의 잔혹 행위에서 시작됐고, 1949년 공산당이 이 파편들을 ‘백년’짜리 단일 서사로 압축했어요.
  • 진짜였던 것은 통일성: 문자·운하·과거제가 만든 거대한 단일 중화권 문화와 시장은 실제 역량이 되었지만, 동시에 ‘통일성을 위협하는 모든 것 = 국치’라는 과민함도 함께 낳았어요.
  • 오진(誤診)이 만든 되먹임 고리: 굴욕의 원인을 ‘서방의 기술력’으로 잘못 짚은 진단이, 제재 → 국가적 자존심 → 더 강한 경쟁자 → 더 강한 제재의 순환을 굴리고 있어요. 이 질문의 답은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를 좌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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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nfi의 서브스택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이곳에서 저는 사회 평론가로서의 유튜브 여정을 뒷받침하는 심층 글을 공유하려 해요. 중국에서, 그리고 이후 영국에서 엔터테인먼트·미디어·기술 산업을 오가며 보낸 30년의 경험이 그 바탕이에요.

아래 글은 제 최신 영상의 바탕이 된 전체 아티클이에요. 동시에 중화권과 서구 세계 사이를 오간 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이 매체를 여는 첫 글로 어울린다고 느꼈어요. 앞으로 제 영상 원고는 이곳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전체 아티클로 확장할 것이고, 유튜브에는 싣지 않는 심층 노트와 마인드맵은 유료 구독자용으로 남겨둘 예정이에요. (듣는 쪽을 선호하신다면 모바일 앱에서 “Listen”을 눌러주세요.)

서론: 딥시크의 모순

중국의 급진적 기술 굴기, 그 한복판에는 기묘한 모순이 자리 잡고 있어요.

2025년 딥시크(DeepSeek)가 글로벌 AI 업계를 뒤흔들었던 걸 우리 모두 기억하죠. 최첨단 중국 모델이 훨씬 적은 비용으로 실리콘밸리 최고 시스템들과 맞설 수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까요.

그런데 2026년 비공개 회의의 유출된 회의록에서,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Liang Wenfeng)은 자기 회사가 여전히 서방 기술을 갈망하며 미국에서 불법 밀수된 엔비디아 칩에 크게 의존한다고 인정했어요. 그러면서도 비꼬듯 이렇게 말했죠. 엔비디아가 딥시크를 화웨이의 중국산 칩과 통합하도록 내몰고 있으니 “제 무덤을 파고 있다”고요. 그 통합이 결국 엔비디아의 생태계를 해체하게 될 거라는 얘기였어요.

서방 기술 생태계에 절박하게 의존하는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그 생태계를 해체하겠다고 그토록 굳게 마음먹을 수 있을까요?

이 모순은 한 세대 전체를 관통해요.

수많은 중국 지식인들이 수십 년을 서방 연구에 바쳤어요. 서방 명문 대학에 다니고, 최고 학자들과 함께 일하며, 미국이 왜 그렇게 강해졌는지 이해하려 애썼죠. 그런데 바로 그 사람들 중 상당수가, 평생을 바쳐 통달하려 한 그 서방 시스템을 원망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요.

제가 아는 이유는, 저도 그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에요.

중국에서 자라며 저는 하나의 이야기를 흡수했어요. 그게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세상을 보는 눈을 만들어버린 이야기였죠. 그 중심에는 영국과의 아편전쟁으로 시작해 현대 중국의 부상으로 끝나는 백년국치 (century of humiliation)가 있었어요. 오늘날 우리나라의 운영 체제를 정당화하는 이야기예요.

분명히 해두자면, 어린 시절 저는 만리방화벽을 넘어 공산당의 어두운 역사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어요. 하지만 서방에 당한 굴욕이라는 그 특정한 이야기 안에는 너무나 강력한 무언가가 숨어 있어서, 다른 모든 이야기를 압도해버렸어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저는 난징대학교에서 최고의 중국학자들과 중국 문화를 공부했고, 이후 상하이의 가장 국제화된 엔터테인먼트·기술 산업에서 그래미 수상 경력의 거장들과 함께 일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영국 왕립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에서 공부하러 영국에 도착했을 때, 저는 이곳의 자유로운 사상의 시장이 답을 보여주길 바랐어요. 중국에서는 우리 굴욕의 근원으로 그려지는 이 작은 섬나라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사회 중 하나가 되었는지를요. 그 역사의 장에서 우리가 무엇을 틀렸는지, 그리고 우리 문화에 대해 무엇을 맞혔는지를 찾아가면서, 저는 제 모국의 가장 기이한 역설을 설명하는 심층 심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해요.

중국이 서방의 기술력을 원망하면 할수록, 더 집요하게 그것을 연구하고, 그것이 되어 간다.

우리가 물려받은 건 굴욕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중국이 왜 굴욕당했는가에 대한 진단을 물려받았어요. 그리고 그 진단이 오늘날의 급진적 기술 굴기를 떠받치는 심층 심리를 규정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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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심층 의식을 만든 상처

이 사고방식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한 가지를 봐야 해요. 1839년에 시작되는 백년국치 이야기는 중국의 모든 아이에게 역사적 사실로만 가르쳐지는 게 아니에요. 더 중요하게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지침으로 기능해요.

우리가 배운 이야기는 이래요. 중국은 언제나 광대한 규모의 통일된 단일 국가였다. 그런데 영국의 아편 무역이 급속히 팽창해 왔다. 청 정부가 이를 막으려 하자 영국은 전쟁으로 응수해 청을 무너뜨리고 홍콩을 빼앗았다. 그 패배가 연쇄적인 외세 침략과 통일의 붕괴, 그리고 파국적인 일본의 정복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1949년 신중국의 건국으로 백 년의 굴욕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이 정서는 1997년 홍콩의 조국 반환을 기념하는 성스러운 의식을 지켜보며 더 강해졌어요. 아편전쟁에 대한 생생하고 감동적인 연설들이 있었죠. 우리는 그 전쟁을 다룬 인기 TV 드라마를 봤어요. 둥관의 아편전쟁박물관에서는 영국 상인 윌리엄 자딘과 제임스 매시선T1이 마약 카르텔을 운영한 범죄자로 그려진 걸 봤고요. 국경 너머 홍콩 중심가에서는 지금도 주요 기업과 건물, 거리가 바로 그 이름들을 대단한 존경과 함께 달고 있다는 아이러니는 전혀 깨닫지 못한 채로요.

그런 정서적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궁극의 목표는, 상처 입은 조국을 재건하고 서방이 가져온 굴욕을 지우는 데 커리어를 바치는 것이었어요. 저는 제 힘으로 그 목표를 이뤘어요.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와 게임, 콘서트의 작곡가로서 전 세계에 작품을 선보이는 커리어였죠. 2016년 베이징의 세계 최대 철골 구조 경기장에서 수만 명의 관중 앞에 중국풍 팝 공연을 프로그래밍하며 서 있을 때, 인정받았다는 실감이 온몸으로 밀려왔어요.

그러다 저는 중국의 고립된 사이버 공간을 벗어나, 해외 유학을 통해 서구의 맥락에서 우리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해 보기로 했어요.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영국이었죠. 그리고 이곳에서, 전에는 결코 접근할 수 없었던 원본 사료를 뒤지고 공개 토론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그 이야기에 대해 줄곧 무엇을 틀려 왔는지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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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대해 우리가 틀렸던 것

아편전쟁 이후 첫 70년 동안, ‘국치’라는 말은 보통의 중국인들, 심지어 엘리트들의 어휘에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 시대의 기록 속에서 그 전쟁은 제가 알던 것과는 아주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어요. 아편은 19세기 세계 대부분에서 합법이었어요. 영국 가정들은 아편을 일상적으로 썼고, 심지어 유아에게도 먹였죠. 그리고 중국의 소비량이 유독 어마어마했던 원인은 국내에 있었어요. 18세기부터 중국 상인과 농민들이 담배를 워낙 싸고 대중적으로 만들어놓은 덕에, 아편 흡연이 그 경로를 타고 퍼진 거예요.

그러다 영국의 아편 무역이 나라의 은 보유고를 빨아들이는 걸 지켜본 청 황제는, 법치가 아니라 외국인 혐오적 폭력으로 단속하기로 해요. 당국은 광저우의 영국 상인들을 자의적으로 포위하고 감금해 무역을 중단하도록 강요했어요. 한편 보통의 중국인들은 대부분 교역을 계속하고 싶어 했고요. 그러자 영국은 군사력을 동원해 청이 무역을 정상화하도록 강제했죠. 현지인들은 포위된 영국 상인과 군인들을 몰래 도왔고, 그중 많은 이들이 영국인들과 나란히 홍콩의 첫 이주민이 되었어요. 그들은 청 당국의 박해를 피해 도망친 난민이었죠. 그 사료들을 바닥에서부터 읽어 보면, 이 전쟁은 영국이 중국 상인들과 함께 폭압적 통치자에 맞선 싸움에 더 가까워 보여요. 당시에는 청 당국조차 척박한 섬 하나를 난민들에게 내준 걸 굴욕으로 여기지 않았어요. 그들 자신도 곧 대규모로 아편을 재배하기 시작했으니까요. 한때 영국을 처벌했던 바로 그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요.

이게 현대의 기술 전쟁과 무슨 상관일까요? 만약 우리가 그 최초의 굴욕을 해석하는 방식이, 그 시대를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의 해석과 극적으로 다르다면, 오늘날 기술력의 방향을 정할 때 우리는 잘못된 교훈을 배우고 있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아편전쟁이 드러낸 위기는 실재했어요. 하지만 강렬한 국가적 굴욕감은 나중에, 주로 일본군과 함께 도착했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일본은 청의 군대만이 아니라 민간인까지 겨냥한 잔혹한 전쟁을 벌였어요. 전환점은 1894년의 뤼순 대학살이었어요. 청일전쟁 중 일본군은 그 항구에서 약 2만 명으로 추정되는 중국 민간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했어요. 대중적 감정으로서의 중국의 국치 의식이 진정으로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그 학살이에요.

1912년 청 황제가 퇴위하고 새 공화국이 부상하는 군국주의 일본과 마주하게 되자, 새 정부는 일본 침략을 기억하는 공식 ‘국치일’들을 제정하고 그 프레임을 학교 교과과정에 새겨 넣었어요.

그리고 1949년, 공산당은 이 별개의 경험들을 모두 물려받아 하나의 백 년짜리 이야기로 압축했어요. 산수는 그들에게 아름답게 맞아떨어져요. 백년국치는 공교롭게도 1949년, “중국 인민이 일어섰다”는 선언과 함께 끝나거든요. 당의 서사가 바꾼 건 이야기 속 아편전쟁의 위치였어요. 주변부에 있던 사건을 기원점으로 끌어온 거죠.

그리고 직관에 반하게도, 공식 노선은 일본을 서방 열강의 일부로 취급해요. 서방의 이념에서 이탈한 전체주의 사회가 아니라, 서방 기술을 흡수해 부상한 나라로요. 이 서사 안에서 굴욕의 기원에 대한 책임은 서방 모델 전체에 씌워져요.

중국군은 심지어 영국이 주도한 아편전쟁에서 시작된 굴욕에 맞서 중국에는 ‘초한전(무제한 전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책T2을 출간하기도 했어요. 일부 중국 논객들의 바이럴 영상은 더 나아가, 아편전쟁의 복수로 미국에 펜타닐을 더 많이 파는 걸 축하하기까지 했죠.

이 서사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악마화했어요. 정작 19세기에는 그런 국가적 굴욕감이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 사건들을 ‘서방에서 기원한 하나의 상처’로 묶는 순간, 미래 세대에게 가르치는 교훈이 달라져요.

서방이 우리의 심층 의식 속에서 희생양이 된 건 애초에 이런 과정을 통해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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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중화권 세계에 대해 우리가 맞혔던 것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역사 그 이상이 돼요.

백년국치 이야기가 다른 무엇보다 앞서 가르치는 교훈은 하나예요. 다시는 약해지지 마라. 그리고 현대 세계에서 약함이란 무엇보다도 기술 종속을 의미해요.

그 교훈이 중국 기술 굴기 뒤의 허기를 설명해요.

그다음 세계화가 왔고, 그 허기는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지식을 만났어요. 몇 세대에 걸친 중국 유학생들이 서방으로 건너가 최전선의 지식을 고국으로 가져왔죠. 저 역시 그 수혜자예요.

하지만 역량의 증폭기는 훨씬 오래된 것에서 왔어요. 굴욕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틀렸던 것과는 별개로, 우리 문화에 대해 우리가 맞혔던 게 하나 있어요. 광대한 규모의 진짜 통일성. 훨씬 유기적이고 실재하는 통일성 말이에요.

통일된 중화권 세계를 규정하는 첫 번째 요소는 언어예요. 한자는 구조적으로 워낙 안정적이어서, 수천 마일 떨어져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쓰는 사람들도, 심지어 여러 왕조를 사이에 둔 사람들조차, 같은 문자 체계를 통해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이것이 지리와 시간을 초월하는 공유된 역사 의식을 단단히 고정시켰죠.

통일성은 물리적이기도 했어요. 농경 문명은 사람들을 고향 땅에 묶어두었고, 세계에서 가장 긴 인공 수로인 대운하는 부유한 남쪽의 곡식을 북쪽의 군사 방패에 실어 나르며 제국을 하나로 꿰맸어요.

그리고 이념적이기도 했죠. 과거 시험은 권력을 좇는 모든 이에게 같은 유교 경전을 암송하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지역 정체성을 침식시켰어요.

이건 생각보다 훨씬 더 기술과 깊이 얽힌 이야기예요. 중국이 이 모든 것으로부터 물려받은 건, 거대한 인구 전체에 지식과 인프라, 표준을 빠른 속도로 퍼뜨리는 유난히 강력한 메커니즘이었으니까요.

그 결과 오늘날 중국 시민들은 외부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이, 유구하고 통일된 중화권 문화에 애착을 갖고 있어요.

텐센트, 바이트댄스, 미호요 같은 주요 테크 기업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면, 공식 노선에 온전히 동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모두가 한 가지만은 흠모하고 있었어요. 문화적으로 통일된 중화권 세계의 순전한 규모. 그것이 가능케 하는 자원과 거대한 동질적 시장, 자립적인 기술 생태계 말이에요.

우리는 흔히 봉쇄된 사이버 공간이 나라의 발목을 잡을 거라고 상상해요. 실제로는, 중국의 고립된 인터넷은 주로 인문학 영역에서만 봉쇄되어 있었어요. 기술에서는 오히려 자생적 국내 혁신의 물결에 연료를 공급했고, 그 물결은 서방의 플랫폼 스택 전체를 밑바닥부터 다시 지어 올렸죠. 그리고 그렇게 재건된 스택을, 통일된 중화권 시장의 규모를 동력 삼아 서방의 맹렬한 경쟁자로 바꿔놓았어요.

위챗, 틱톡, 테무, 그리고 그 뒤의 거인들인 텐센트, 바이트댄스, 알리바바는 인스타그램과 X, 아마존이 그곳에서 차단되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14억 명이 ChatGPT와 Claude를 쓸 수 없게 막히지 않았다면, 딥시크와 Kimi가 거대한 국내 AI 수요를 채워야 할 일도, 그러다 세계적 헤드라인을 장식할 일도 없었을 거고요.

그러니 중국의 기술 굴기는 단순한 카피를 훨씬 넘어섰어요. 유난히 큰 보호 시장 안에서 서방으로부터 배우고, 배운 것을 거대한 산업 집적지 전체로 확장한 거죠.

그 업계의 거장들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요. 광대하고 봉쇄된 영토와 사이버 공간 위에 세워진 그 메커니즘 없이는, 자신들의 기술 스택 어느 것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요.

그리고 그건 공교롭게도 중국 당국이 지키고 싶어 하는 바로 그것이기도 해요. 봉쇄된 인터넷은 당의 정통성을 지키는 방패로 기능해요. 그 광대한 영토를 하나로 붙들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니까요. 당의 사고방식은 그렇게 ‘디지털 주권’을 강화해요. 국내 기술 스택이 자체적으로 굴러가게 하는 고립된 사이버 공간을요.

이게 우리가 우리 문화에 대해 맞혔던 부분이에요. 통일된 중화권 세계에 대한 집착은 실재하고, 실재하는 역량을 만들어냈어요. 하지만 부작용이 따라와요. 역사적이든 현대적이든, 그 통일성을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에 대한 국치 과민증으로 심하게 기울어진다는 거죠.

우리 모두가 아는 농담이 있어요. 사람이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 태어나는 것, 중국을 모욕하는 것, 그리고 죽는 것.

그리고 이렇게 역설은 증폭돼요. 기술적 독립을 가능케 하는 바로 그 시스템이, 서방의 모든 압박을 또 하나의 굴욕처럼 느끼게 만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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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전쟁을 움직이는 오진

화웨이를 봅시다. 이 기술 대기업은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를 받았어요. 국가와 연계된 지식재산 절도, 사이버 스파이 활동, 이란 정권 같은 반서방 세력 지원에 대한 광범위한 증거가 근거였죠. 하지만 굴욕의 사고방식 안에서 그 제재는 오직 한 가지로만 읽혀요. 강자가 중국을 다시 약하게 묶어두려 한다. 그래서 당은 화웨이를 국가적 자존심의 절대적 상징으로 격상시키고, 막대한 국가 자원을 부으며, 딥시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중국 테크 기업의 기반 하드웨어 공급자로 만들었어요. 그 결과 더 강한 중국 경쟁자가 태어났고, 그것이 더 많은 미국의 규제를 촉발했으며, 그 규제가 다시 그 이야기를 확증해 주었죠.

이것은 되먹임 고리예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화웨이는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됐어요. 자사 전기차의 제스처 제어 도어가 오작동하는 바이럴 영상을 국내 소비자들이 올리지 못하게 막기까지 했죠. 국가의 자존심이 된 이 회사는 이제 심각한 품질 문제에 대한 어떤 피드백도 ‘서방 적대 세력을 이롭게 하는 국치’로 규정할 수 있어요. 오작동하는 자동차 문짝 하나가, 국가의 상처로 취급되는 거예요.

책임 추궁을 굴욕으로 취급하는 이 사고방식은, 우리를 제가 서두에서 말한 오진으로 곧장 데려가요.

우리는 심층 의식 속 역사적 상처의 원인을, 시민적 자유와 의회 정치의 사회인 영국으로 상징되는 서방의 기술력에 잘못 귀속시켰어요. 정작 그 역사적 고통의 가장 날카로운 근원은 일본의 전체주의적·군국주의적 체제, 그리고 청 왕조 자신의 폭압적 통치였는데 말이죠. 이야기 속의 전체주의적 이념은 조용히 면죄부를 받았어요. 가장 자유로운 이념이 원흉으로 만들어졌고요.

그 오진에서 하나의 결론이 도출되었어요. 서방의 힘은 그 기술에서 나오며, 그 기술은 중국 착취로 가능해졌다는 것. 그리고 기술 아래에 있는 정치 모델, 그러니까 자유와 열린 토론, 권력에 대한 견제 같은 것들은 무관하거나, 아니면 그 자체가 병이라는 것.

그렇게 서방은 우리 마음속에서 동시에 두 가지가 되었어요. 우리 굴욕의 근원이자, 우리에게 필요한 힘의 기준점. 딥시크가 집요한 학습을 통해 서방 의존을 끝내는 일을 국가 생존의 문제로 취급하는 이유, 그리고 서방의 모든 규제를 그 생존이 위태롭다는 새로운 증거로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만큼은 솔직해야 해요. 중국의 천재적인 두뇌들이 이뤄낸 놀라운 혁신은 실재해요. 그래서 우리 시대의 열린 질문은 ‘중국이 혁신할 수 있는가’를 넘어서요. 한 나라가, 그 과실을 가능케 한 시스템 자체와는 대면하지 않은 채, 자신의 적대자들이 만든 시스템의 과실만 무한정 뽑아낼 수 있는가. 그 답은 중국보다 훨씬 많은 것의 모양을 결정할 거예요.

제가 이 사고방식들을 알아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안에서는 보기 어려웠으니까요. 이것들이 실재한다는 걸 제가 아는 이유는 그 안에서 살았기 때문이고, 그 현실을 재구성하는 일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지적 작업 중 하나였어요. 제가 쓰고 논의한 모든 것이 그 과정에서 나왔죠.

그리고 제가 도무지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역설이에요.

역자 주

  1. 윌리엄 자딘 & 제임스 매시선(William Jardine & James Matheson): 아편전쟁 직전 대중국 아편 무역을 주도한 스코틀랜드 출신 상인들. 두 사람이 1832년 세운 자딘 매시선(Jardine Matheson) 상회는 지금도 홍콩을 대표하는 대기업 집단으로 남아 있어, 본문에서 말하는 “국경 너머의 아이러니”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2. 초한전(超限戰, Unrestricted Warfare): 1999년 중국 인민해방군 대교(대령급) 차오량과 왕샹쑤이가 쓴 군사 전략서. 군사력 격차를 뛰어넘기 위해 금융·무역·법률·미디어 등 모든 수단을 ‘한계 없이’ 전쟁에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해, 서방에서는 중국의 비대칭 전략을 읽는 텍스트로 자주 인용됩니다.

저자 소개: Yinfi는 중국과 영국에서 30년간 엔터테인먼트·미디어·기술 산업을 경험한 작곡가이자 사회 평론가입니다. 난징대학교에서 중국 문화를 공부했고, 영국 왕립음악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참고: 이 글은 Yinfi가 자신의 서브스택에 게시한 아티클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 How “Humiliation” Drives China’s Radical Tech Rise - Yinfi, Substack (2026-08-22)

생성: Claude (Anthropic)

총괄: (디노이저denoiser)